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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n 24. 2020

차갑고 뜨거운, 슴슴하고 슬픈

 이명원/'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의 문장은 언제 읽어도 좋지만 여름에 특히 제격이다. 그것들은 깨끗한 나무 쟁반 위에 놓여 있는 한 그릇 소면처럼 담백하다. ‘슴슴'한 것이 이런 맛일까. 형용사나 부사는 물론 쉼표나 느낌표의 사용마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장식적 표현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마저 느껴진다.

간명하지만 공명하는 문장, 오랜 기간 숙성된 정신만이 발음할 수 있는 깊은 지적 성찰.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자각. 오랫동안 천천히 읽어야만 그 문장들의 맛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의 비평은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삶 혹은 세상 읽기인 셈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입을 빌려 그의 비평이 지향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고백한다. ‘진실이란 관용적일 수 없으며, 타협과 제한을 인정할 수 없고, 과학적 연구는 그 자체로서의 모든 분야의 인간 활동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의 글이 단순한 문학비평의 층위를 넘어 전반적인 인문/사회비평으로 나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글쓰기 원칙은 일사일언 (一事一言).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표현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는 고군분투했다. 모두들 문단권력, 출판 권력의 우산 아래에 헤쳐 모여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할 때, 그는 혼자 남아 고단한 자신만의 길을 오랜 기간 걸어왔다. ‘한국문학의 태두‘ 김윤식과 맞짱을 떠 그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문학권력과 주례사 비평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이끌어냈다. 그 와중에 그는 직장을 잃고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했다.

장정일이 위악과 자조로 똘똘 뭉친 자생적 게릴라 라면, 이명원은 자신만의 신념과 시선으로 세상을 올곧게 응시하는 문사의 이미지에 가깝다. ’ 시란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 김수영의 이 문장이 아직 유효하다면 이명원에 대한 헌사로 돌려도 무방하리. 김수영의 경우처럼 그의 글쓰기는 그의 삶이다. 그는 삶과 글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문학비평가다.

언젠가 그는 작가 김훈을 언급하면서 '문체가 아름답다는 말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은 문체의 충만함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 이때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장식적 수사 너머에 있는 삶의 치열함과 경건함’이다.

이 폭염의 여름에 이명원의 책을 다시 꺼낸다. 누추한 삶과 비루한 욕망,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의 엄숙함과 존엄함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차갑게 응결되어 있다. 그런데 정체모를 이 슬픔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가. 차갑고 따뜻하고 투명한 이 슬픔의 얼굴은 누구의 것인가.  

* 따옴표 속 문장은 이명원의 것임

#이명원
#마음이_소금밭인데_오랜만에_도서관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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