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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May 17. 2024

5월, 북한산

꽃이 지자, 뱀이 나타났다. 이번 달 들어 세 번째, 독사로 추정되는 뱀이 이곳저곳 두서없이 출몰한다. 맨발로 그것의 푸른 눈을 밟거나 돌멩이로 그놈의 대가리를 내리쳐 죽여야 현자가 된다. 서양 신화의 한 대목인지, 먼 나라 원주민의 통과의례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살 만큼 살아 보신의 이치에는 밝은지라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길을 오르다 보니 꽃이 전부 진 건 아니다. 작은 들꽃이 몇 군데 군락을 이루며 낮게 피어있다. 갑자기 꽃이 사라진 건 며칠 새 내린 비와 바람 탓만은 아니다. 진달래, 산수유, 철쭉이 지면 애기똥풀, 섬노린재가 핀다. 필 때 되면 피고, 질 때 되면 알아서 지는 것은 꽃의 일, 사람이 따지고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정표에서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누군가는 ‘한 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북한산의 길은 결국 하나, ‘탐방로’ 밖에 없다. 산을 구속하는 것 역시 세속법이어서 샛길을 걷다 적발되면 고액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세상에 순치된 이 나이에 공연히 소란을 피울 이유가 없다. 그간 가라는 길만 묵묵히 걸어왔으나,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삼천사의 옛터를 둘러보고 싶어 출입이 금지된 샛길로 접어든다. 진입을 가로막은 밧줄을 넘자 온갖 수풀과 잡목이 무성하다. 삼천사는 1,300년이 넘은 고찰, 삼천골 초입으로 옮긴 기간만 헤아려도 족히 50년 넘게 방치된 곳이다. 길은 진작에 사라졌고 사방이 숲으로 막혀있다.


몇 군데 폐사지를 둘러봤지만, 이렇게 완벽한 폐허는 처음이다. 사찰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돌 몇 개만 눈에 띌 뿐, 천 년 넘은 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계곡 너머로 웅장한 바위산이 보인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너른 단면과 그 위에 무언가를 새긴 형상도 눈에 들어온다. 음각의 윤곽이 흐릿해 어떤 부처의 모습인지 분간하기 힘든 미완성의 작품이다.


원래 세존의 진신사리 3 과를 봉인한 탑이 이곳에 있었으니, 적멸보궁이 있던 곳도 바로 여기다. 불상을 절에 모실 수 없어 안타까웠을까? 석공은 계곡 너머 저 가파른 절벽에 부처의 형상을 새기려 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고, 이후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풍문에 의하면 버려진 절터에 부처가 산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부처는 저 절벽 부근 어딘가에 거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샛길을 빠져나오니 다시 오르막길이다. 가파른 절벽을 여러 차례 기어올라 겨우 나한봉 羅漢峰 정상에 올랐다.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한 지혜를 얻은 자, 나한. 그의 이름을 딴 봉우리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내려다본다. 그때쯤, 어디선가 풍탁 風鐸에 실린 존귀한 말씀이 들려왔다. 그 말은 간명했다.


여시아문 如是我聞, 나는 세존의 말씀을 이렇게 들었다. ‘모든 것이 삶이다. 삶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까지도 삶이다. 길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아난다여! 길 위에서의 삶을 견디고 향유하라’


다시 삼천사로 내려왔다. 아기 부처의 정수리에 감로수를 부으며 죽은 석가를 생각한다. 그는 길 위를 걷고,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나 길 위에서 결국 죽었다. 집으로 가는 길, 떨어진 꽃잎 위로 오후의 고요가 쌓여 있다.


#삼천사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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