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센터에 도착하니 주차장 반 정도가 이미 차 있다. 겨울 동안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인적을 피해 일부러 월요일을 택했는데 이제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아니다 금세 마음을 바꿔 먹는다. 좋은 계절에 호젓한 산행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제단 앞, 한 늙은 비구니가 정좌한 채 목탁을 두드리며 독송을 한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목소리가 힘차고 낭랑하다. 바람에 흔들린 풍경 소리도 청아하다. 집에서 입고 온 얇은 봄 점퍼도 성가시고 무거워 배낭에 구겨 넣었다.
북한산에는 봄이 더디 온다. 불과 보름 전에야 산정 부근의 잔설이 다 녹았다. 볕 좋은 구릉 몇 군데에서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를 볼 수 있으나 그것도 성기게 드문드문 피었을 뿐이다. 그래도 골짜기의 크고 작은 물골에서 물줄기는 거침없이 떨어지고 그 소리 또한 우렁차다.
경사가 완만한 초입을 걷다 보니 길가에 들꽃 한 송이 홀로 피어있다. 잠시 그 앞에 머물다 기어이 핸드폰 카메라를 열고 사진을 찍었다. 꽃 이름을 알려주는 앱에 의하면 그것이 피나물일 확률 82%, 그렇지 않을 경우의 수도 18%다. 그래도 그냥 피나물꽃이라고 하자. 산에서 또 하나 배웠다. 피나물은 나물이 아니고 꽃이다.
산 중턱에 접어들자 멀리서부터 눈에 익은 실루엣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몇 번 얘기까지 주고받았던 ‘도그맘’이다. 추운 겨울, 산정에 있는 개들의 섭생을 책임져 온 여인이다. 얼굴은 바람에 그을려 거칠지만, 매일 반복되는 산행으로 산처럼 다부진 몸을 가진 ‘강철 여인’이다. 커다란 등산용 배낭이 홀쭉해진 걸 보니 이미 배식을 끝내고 내려가는 중이다.
봉우리 부근 여기저기에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일원이 되도록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여인이 내게 해준 얘기는 그 말이야말로 헛소리다. 한겨울 한 끼를 겨우 해결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결국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마침내 봄, 녀석들은 또 몇 계절을 버틸 수 있게 됐다.
일주일 사이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몇 무리의 등산객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와중에 좁은 산길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목적지인 사모바위 헬기장에 도착했지만, 여긴 아예 도떼기시장이다. 각자 준비해 온 무언가를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운 일고여덟 명의 젊은 여인들, 옷차림부터가 화려한 원색에다 요즘 유행하는 꽉 낀 레깅스형 등산복이다. 근처 늙은 남자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는 것이 민망할 법도 한데, 그들의 젊음과 육체는 한치 거리낌 없이 당당하다. 김밥, 컵라면, 샌드위치 등을 쉼 없이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숙취로 인해 아침을 걸러 그런지 허기가 밀려왔다. 빈말이나마 김밥 반줄이라도 권할지 싶어 근처를 서성거렸으나 어림도 없다. 터줏대감 격인 개들만이 그들이 던져준 음식을 게걸스럽게 받아먹고 있다.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한다. 다행인 것은 봄이니까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봄이라는 것이다. 봄. 만유관능 萬有官能의 계절이다. 그냥 살아있기만 해도 행복해서 누구는 그것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축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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