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J May 19. 2024

시집 한 권, 장무상망 長毋相忘

누군가 시집은 읽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머무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시집은 한 번 읽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고 평생 더불어 산책하는 사물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유통기한이 없다지만, 그 행간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시집 곳곳에 묻어있는 것은 실패한 연애와 눈물, 값싼 감상과 멜랑콜리, 어설프고 못생긴 과거의 초상뿐, 이제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청승만 도진다.


난이나 수석을 즐기는 것도 지나치면 집착이라는데 그까짓 돈도 안 되는 시집 나부랭이가 뭐가 대수랴. 말이 좋아 '애장 시집'이지 과거 집착이자 추억 페티시즘이다. 삶을 온전히 잘 쓰고 소모하는 방법은 쓸만한 것을 제때 버리는 것이니 이제 그것들과 결별해야 할 때다.


가지고 있는 시집은 어림잡아 2, 3백 여권, 시집을 하나하나 사서 읽던 시절이 내 '근대사'와 일치한다. 시대를 탓하며 분노와 결기에 사로잡혀 읽은 것,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읽은 것, 별안간 비명횡사한 시인들을 애도하며 읽은 것, 봄날 저녁 한가한 몽상에 잠겨 읽은 것도 있다.

스물다섯, 당시 여자 친구의 첫 시집도 있다. 군 복무 중 장난 삼아 끄적거린 졸 시 몇 편을 편지에 담아 보냈는데, 그게 나도 모르게 여친의 첫 시집에 포함됐다. 여러 권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시인 서명본 하나만 남아있다.


책의 보존 상태는 살아온 날들처럼 엉망진창이다. 가끔은 시에 대한 짧은 감상도 적혀 있고, 누군지 모를 전화번호로 추정되는 아라비아 숫자도 있다. 커피를 흘린 자국, <8과 1/2>, <쎈셋 대로>, <시민 케인>…. 꼭 보고 싶어 했던 영화제목도 간간이 적혀 있다.


이제 담배를 나눠 피우는 사람도, 술잔을 돌리는 사람도, 탁자를 치며 통음하거나 소리 내 우는 사람도 없다. 세상은 어느덧 단정하고 위생적인 곳이 되었는데 누가 남이 읽던 시집을 좋아하겠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집을 건네기 전 늘 하는 일은 그것을 한 번 쓰다듬고 마지막으로 정독하는 것이다. 밑줄 친 문장 일부는 개인 블로그에 옮겨 적기도 한다.  ‘동백, 당신이 내 속에서 울먹여 내가 겨우 연명할 뿐이다. 그뿐이다’. 지난달 Y에게 마종기 시집을 건네기 전, 마지막으로 읽고 옮겨 적은 문장이다.


이른 봄날 저녁, 저 싯귀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시간의 피조물이니 읽을 때마다 저 문장은 뒤로 멀어지는 풍경과도 같은 것이리. 시집을 건네기 전 한마디 던진다. ‘소중히 다뤄주라. 재떨이나 라면 냄비 같은 거 올려놓지 말고. 커피 머그잔까지는 오케이'


몇 년 동안 순조롭게 시집 '분양'을 하던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엉뚱한 일도 생긴다. 작년 언제였던가, 음악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에게 김종삼 시집 <북 치는 소년>을 건넸다. 1978년 발간된 문예지식사 초판, 출판사는 진작에 망하고 없다. 인터넷 중고 서점 알라딘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근대 도서'다.


원래는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L에게 전하려 했으나 그가 공교롭게 모임에 불참하여 못지않게 애쓰는 K에게 건넨 것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달포 전쯤 K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덕분에 시집 잘 읽었습니다. 이거 워낙 오래되고 귀한 책이라 돌아가며 읽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일단 제 뜻을 전하고 시집을 L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이 시 참 좋습니다' 그가 카톡으로 옮긴 시는 <평화롭게>라는 김종삼의 짧은 시다.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평화롭게



시의 정신이 노는 것이라면, K는 제대로 노는 법을 알고 실천한 셈이다. 카톡을 보자마자 추사의 <세한도>가 떠올랐다. 제자 이상적인 그것을 가지고 청나라로 가 추사의 친구와 문인들로부터 받은 감상평과 글, 그것을 그림에 이어 붙여 세한도의 가치와 품위가 더해졌다던가? 세한도에 찍힌 추사의 낙관도 생각난다. 장무상망,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


결국 시집을 나누고 벗을 얻은 셈인가? 세상에는 가끔 좋은 시 한 편 같은 善緣이 있다. 살다 보면 간혹 좋은 음악처럼 천천히 스며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전 03화 육십 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