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쌓고 소망하다
산사를 뒤로하고 탐방로에 들어서자 고양이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온다. 작년 늦가을 비봉 碑峰 정상에서 본 그 녀석이다. 그때, 내가 내민 귤 하나를 본체만체했던 누런 줄무늬 고양이 그놈이다.
갑자기 녀석이 나를 훌쩍 앞서더니 돌연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인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나 보다. 자존과 품위마저 내팽개친 녀석이 안쓰럽지만, 오늘은 그 흔한 귤마저 없다.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까지 계속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북한산은 골산骨山 이다. 계곡을 끼고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크고 작은 돌과 바위가 점점이 박혀있다. 가파른 산비탈에 놓여있는 것도 있고 작은 바위 위에 걸터앉은 거대 암석도 있다. 일견 중력을 거스른 모습 같아 위태로워 보이나 다들 지질학적 시간을 견딘, 나름 시간의 대가들이다.
탐방로 초입부터 돌탑들이 길가에 도열해 있다. 사람이 돌을 주워 소망을 담아 쌓은 것은 크건 작건, 많건 적건 모두 탑이다. 오다가다 돌 하나씩 던져 만든 돌무덤도 있고 두 개의 돌로 사람 모양을 흉내 낸 것도 있다. 큰 바위 비탈면에 아슬아슬하게 쌓은 것도 있고, 평상같이 너른 바위 위에 달랑 돌 한 개로 시늉만 낸 것도 있다.
탑의 ‘묘지’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그 부근에 이르러야 첫 번째 이정표가 보인다. 왼편은 부왕동암문, 직진하면 대남문 오른편은 비봉/사모바위 방향이다. 이번엔 ‘문수봉 3.8km’다. 겨울엔 눈이 내리고 그것은 쉬 녹지 않고 계속 쌓이므로 이즈음의 산길은 늘 미끄럽다. 아이젠 장비도 없는지라 바위를 탈 때는 늘 긴장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난감한 건 멀쩡하게 이어지던 길이 사라지는 일이다. 말이 그렇지 길이 사라질 리 있겠는가. 단지 눈에 덮여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기어오르고,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 한참 동안 길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길의 말미를 붙잡을 수 있다. 이때부터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 헉헉대며 올라가도 끝없는 오르막길, 힘에 부쳐 숨이 턱까지 찬다. 저질 체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살면서 헛된데 힘을 다 써버린 탓, 다 내 탓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또래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터벅터벅 내려온다. 가벼운 목례를 나눈 후 지나치는 게 이곳의 인사법이지만 그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사람 처음 봤습니다’
드디어 문수봉 정상이다. 산 아래에 산, 그 아래 또 산, 겹겹이 산이다. 그 너머에 아파트와 도로와 공장이 보이고, 그 너머 노을에 물든 한강이 보인다. 흔한 감상에 잠시 젖을 무렵, 기척이 느껴져 아래를 보니 개 두 마리가 나를 보고 있다.
토종견 같기도 진돗개 같기도 한 누런 개 한 쌍이다. 눈빛을 보니 순하디순한 것이 야생에 놓인 지 오래되지 않은 착하고 여린 것들이다. 산 정상에서 길고양이는 자주 봤으나 개는 처음이다. 무슨 사연으로 이 험한 바위산까지 올라왔는지, 누구에게 버려진 건지 알 수 없다. 저리 덩치가 크고 순한 것들이 한겨울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낼 수 있을지, 녀석들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기가 미안하고 멋쩍다.
겨울 산은 어둠이 빨리 온다. 하산 길은 더 미끄러우므로 서둘러 배낭을 짊어진다. 사실 정상에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다. 걸을 때는 땀이 나지만 걷기를 멈추면 금세 땀이 식어 오한이 든다. 다시 이정표 부근, 세워 두었던 지팡이가 보인다. 고사목 가지를 꺾어 만든 일회용 지팡이인데, 속이 여물고 단단해서 벌써 서너 차례 사용하고 있다. 이번 겨울을 이것과 같이 날 수도 있겠다.
탐방로 초입에 다다르자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이명 탓인 줄 알았으나 몇 번을 들어도 같은 소리다. 누군가가 나무에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멀리서 딱따구리 하나가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다. 지난주에는 곰만 한 멧돼지가 계곡에서 산 중턱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산에도 살아 있는 것들이 있다.
돌 두 개를 주워 그것으로 아담한 바위 위에 탑을 쌓았다. 하나는 내 안위를 위해, 다른 하나는 겨울 산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안위를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인다. 다음주가 대한이던가? 겨울도 깊고 산도 깊다.
#북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