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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Apr 14. 2024

육십 세

육십 세


어깨를 겯고 같이 걸었던 친구들

모두 떠났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던 튼튼한 신념은

진작에 무너져 흔적조차 없다. 

죽고 못 산다던 애인들은 

행방이 묘연하다. 


마당 한 구석의 제비꽃과 매발톱꽃

올해도 꽃을 피워주어 고맙다. 

바람에 실려 왔는지 

처음 보는 무스카리와 팬지도 꽃을 피웠다. 


육십, 스물 세 곱의 나이

아직도 곁에 머물거나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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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노트>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꽃과 매발톱꽃이 피었다. 고마운 마음에 마당에 나가 들여다보니 어라! 못 보던 것들까지 수줍게 피어있다. 하나는 무스카리, 또 하나는 팬지다. 그새 쉼 없이 바람이 불었구나. 꽃씨를 머금은 바람이 용케 마당으로 흘러들어 예쁜 꽃을 피웠다. 또 4월, 햇빛이 얼마나 환한지 바람의 속살까지 보일 듯하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숨을 들이켜니 온갖 꽃향기가 몸에 차오른다. 봄이다. 


관목으로 울타리 삼아 두른 두 평 남짓한 마당,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 이 집을 샀다. 우리가 16강, 8강, 4강에 올라갈 때마다 동네 친구들과 마당에 모여 시끌벅적하게 술추렴을 했다. 삼겹살을 구워가며 소주를 마셨고, 서로 어깨를 겯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연신 폭죽을 쏘아댔다. 이른바 리즈 시절, 모두 젊고 자신만만했으며, 아이들도 착하고 건강하게, 하루가 멀다 무럭무럭 자랐다. 소주가 달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마당에 작은 어항을 놓고 금붕어도 몇 마리 풀어놓았다. 제법 큼직한 옹기 수반을 사서 부레옥잠 몇 뿌리를 물 위에 띄웠다. 나뭇가지에 풍경 하나를 매달아 놓았는데 미풍이 살랑살랑 불 때마다 제법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도 났다. 혹시 길 잃은 새가 날아올지 몰라 빈 새장도 하나 걸어 뒀다. 주말 오전, 가끔 마당에서 다 같이 브런치를 먹기도 했는데, 신기하기도 해라. 이제 서른을 갓 넘긴 큰 녀석이 20여 년 전 그때 들었던 음악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인생의 절정에서 들었던 음악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화로운 멜로디다. 


장모님이 애지중지하던 동백을 옮겨 심은 곳도 이곳 좁은 마당이다. 웃자라는 나무를 화분의 몸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생선 대가리와 뼈, 각종 잔반을 모아 자주 거름으로 주었으나, 그것은 한 번도 그 처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 적이 없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심어야 한다기에 거실 창 바로 앞으로 옮겨 심었으나 마찬가지, 무리한 삽질로 애꿎은 허리만 다쳐 며칠간 통원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비록 낡았지만 남향이라 볕은 좋았다. 두 개의 나일론 끈을 나무에 칭칭 감아 종횡으로 이어진 빨랫줄을 만들었다. 날 좋으면 반나절도 안 돼 빨래는 바짝 말랐고 아내와 아이들은 옹기종기 앉아 그것을 정갈하게 개고는 했다. 


원래 마당 한구석에는 오래된 포도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포도는 열린 적이 없으나, 대추는 매해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긴 장대로 나무 윗가지를 툭툭 치면 굵은 대추가 땅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추석 차례상에 올리고, 남은 것은 이웃집 몇 군데에 고루 나눴다. 


종국에 그 고목들은 밑동까지 잘렸는데 위층에 사는 교감 선생님의 어처구니없는 민원 탓이었다.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자신의 일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과년한 딸과 같이 사는 그녀의 성정은 성마르고 괴팍했다. 집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면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울라치면 창문을 열고 동네 떠나갈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몰티즈 종種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떠나보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녀석은 이웃집 강아지와 함께 온종일 마당 주변을 뛰어놀았고, 배고프면 잠시 들어와 배를 채운 뒤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베란다 앞 널찍한 포석에 얼굴을 묻고 오수를 즐기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랜 해외 근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 다행히 윗집 선생은 이사를 가고 없다. 풍경도 사라지고 꽤 쓸만했던 수반도 없어졌다. 어머니가 주신 옹기 항아리만 금이 간 채 마당 한 구석에 방치돼 있다. 온전히 남아 있는 건 빈 새장 하나, 그 위치 그대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또 몇 년이 지나고 마당은 예전의 그 모습을 얼추 갖췄다. 둥근 유리 테이블과 철제 의자 몇 개, 낮잠을 잘 수 있는 무중력 의자도 하나 갖다 놓았다. 여러 해 전 집에 들인 샴 고양이 한 마리가 강아지를 대신해 마당을 차지했다. 내가 마당에 머무는 동안은 제법 멀리까지 갔다가도, 멀리서 낯선 길고양이라도 보일라치면 기겁을 하고 마당으로 되돌아온다. 


찬란했던 열애의 한 시절을 이 마당은 기억할까? 내년에 이사를 간다. 그래도 아직까지 이 두 평 남짓한 마당에서 제비꽃과 매발톱꽃, 새 식구인 무스카리와 팬지까지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내 나이 육십 세. 꽃 피기 전까지가 봄이라지만 아직 봄, 꽃 지기 전까지 봄이다.


#시 #문학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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