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모과 한 알 줍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것은 씨알이 잘고, 제법 튼실한 것은 흠집이 많다. 조금 늦게 산책로에 나가면 부지런한 경비원이 청소를 마친 후라 남아 있는 게 없다. 한적한 저녁이나 한밤중, 자주 밖에 나가 모과나무 아래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 달 남짓 주운 모과가 스무여남은 알이 전부다. 어차피 상한 부위는 잘라 내 차를 담글 목적이니 그럭저럭 쓸만한 것들로 하나둘씩 모았다.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고 주방 타월로 물기를 닦은 후 테이블 위 함지에 담아뒀다.
이 난데없는 모과 줍기는 여사친과 밥을 먹다가 나눈 얘기가 발단이었다. 자랑삼아 집 주위에 모과가 지천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녀의 반응이 예상외로 적극적이다. “그래? 그럼, 좀 가져와 봐. 모과차 담가 먹게. 그게 기관지와 폐에 좋다는 데, 내가 요즘 기침도 자주 하고 그렇거든”
매번 밥값 낼 때 멀리서 그녀의 등짝만 쳐다봤는데, 그래 나도 오랜만에 뭔가 보여주마. 그런 심정이었다. 그 마음은 시종 기특했으나 모든 게 때가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엊그제 외출해서 돌아와 살펴보니 절반 정도가 이미 상해 있다. 껍질 색깔이 반점처럼 번진 게 있는가 하면, 검게 부패한 것, 진액이 말라서 허연 분말이 묻어나는 것도 있다. 한 박스 분량을 채우려 너무 오랜 시간을 방치한 탓이다. 자주 살펴보지 못한 내 탓도 있다.
부패 정도가 심한 것을 따로 골라내니 막상 성한 것이 많지 않다. 그간 애쓴 시간과 정성이 허사가 된 듯해 순간 울적했는데, 마침 그 마음을 위로하듯 은은한 모과향이 풍겨온다. 스무 살 때 여친이 좋아했던 일랑일랑 향 같기도, 시골 우물가에 핀 치자꽃 향기 같기도 하다. 하나하나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으니 많이 상한 것일수록 향이 더 강하다. 과일도 시절 인연이라, 성한 것은 차를 끓이고, 상한 것은 눈과 코가 즐거우니 가을, 겨울을 같이 나면 되겠다.
택배를 받을 친구의 환한 얼굴이 그려진다. 벗이여! 그대도 한창때는 풋풋한 체리향의 관능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쉰을 넘긴 원숙한 여인, 그대의 체취를 닮은 모과 한 상자를 보내오. 비록 잘나지 못했으나 한 시절 내내 그대 곁에 머물리니, 부디 내치지 말고 어여삐 여겨 가끔 밥과 술을 사시라.
사족 : 시인 이성복의 <무한화서>에 ‘모과는 계속 닦아줘야 썩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
#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