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하는 노트북은 그의 유품이다. 딸에게 주라는 구두 유언을 남겼으나, 정작 딸에게는 소용없는 것이라 결국 내게로 왔다. 받자마자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초기화시켰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그의 사소한 흔적마저 지워버리려는 심사였다.
그는 나와 적잖게 터울이 진 우리집 맏형이다. 유난히 착하고 명석해서 주위 사람 모두가 그를 아끼고 좋아했다. 툇마루에 앉아 서툰 솜씨로 기타를 치던 소년시절 형의 모습이 생각난다. 기타 반주에 맞춰 ‘등대지기’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소절씩 내게 가르치던 기억도 있다.
늘 형의 흉내를 내며 살았으니 내 필체가 형의 것과 똑같다는 걸 알게 됐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영화광이었던 그가 ‘명화’라며 내게 보여준 영화는 셀 수조차 없다. 고교야구 명문이었던 형의 모교가 시합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손목을 끌고 동대문 구장으로 향했다.
베풀기 좋아하고 다정다감했던 그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 건 두 번째 이혼 이후부터였다. 씀씀이가 인색하고 입도 거칠어졌다. 사나운 언사로 인해 형제들과 사이가 틀어져도 먼저 사과하는 법이 없었다. 두 아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더니 급기야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완전한 고립을 자초하는 듯 보였다.
대신 그는 밖으로 떠돌았다. 해외 체류 기간도 점점 길어졌다. 몇 년 전, 형의 국민학교 동창 P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다짜고짜 형의 생사부터 확인하라는 것이다. 수년간 연락이 되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형의 블로그에 접속하니 라오스 어느 산간 오지에서 차를 마시고 밭을 갈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혼자 떠돌다 올 초, 마지막 목적지인 아프리카 여정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스페인 어느 항구에서 배편을 수소문하던 중 난데없이 각혈을 했다.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형의 집을 찾아 혼자 누워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삶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회한도 없노라고 그는 말했다. 장례식장에 모인 형의 두 아들과 우리 형제 누구도 그리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입관식에서 그의 차가운 얼굴을 마지막으로 쓰다듬은 이도 내가 유일했다.
5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 영화 동호회에서 건네 받은 옛날 영화가 생각나 노트북 포트에 USB를 꽂는 순간, 갑자기 D 드라이브 목록이 나타났고 한글 문서 하나가 눈에 보였다. 형의 유서였다. 유서라기보다 감정이 일체 배제된 행정문서에 가까웠다. 수신자는 둘째 아들. 본인 소유의 동산, 부동산 보유 현황과 처분에 관한 내용이 전부다. 그런데 ‘문서’ 말미, 뜻밖의 내용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한 현지 여성의 이름과 연락처, 계좌번호가 적혀있고 상당 금액을 그 계좌로 이체하라는 내용이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 금액이 어떤 성격인지 아무 언급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노트북 전원이 꺼지는 동안 <리어왕>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떤 죽음도 다른 죽음보다 크지 않으니, 나는 형의 죽음보다 지나간 그의 삶이 더 궁금했다. 그는 진정 고독했을까? 혹시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누구였을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넓은 들 밖의 쉼터’는 형의 개인 블로그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혹은 자신조차 몰랐을 수도 있는 그 삶의 흔적이 2023년 3월 9일 가만히 정지한 채 헛것처럼 그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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