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무신론자다. 육체보다 오래 사는 영혼 따위는 믿지 않는다. 죽음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으니 ‘불가지론자’라는 표현이 더 낫겠다. 종교에 대해 깊이 사색하거나 공부한 적이 없으므로 신념을 갖춘 것도 아닌, 그냥 얼치기다. 막연하게 '종교는 반지성'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5, 6년 전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불교는 허무주의'라는 예단 또한 잘못된 것이었다. 철저히 삶을 긍정하고 죽음까지 의연히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 그것 역시 불교였다.
화엄의 본래 이름은 잡화 雜花, 책의 저자 한형조는 이 세상이 ‘허접한 꽃들의 축제’라고 말한다. 사람은 들판과 우주에 마음대로 피어 있는 이름 없는 무위의 들꽃, 저마다 저 나름대로 피고, 그 핀 자태와 향기가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이 세상 풍경이다.
저자에 의하면 불교는 신과 같은 초월적 인격을 상정하지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 지옥도 없다. 후줄근하고 남루한 지상의 삶이 전부이나 오히려 그 속에 진여의 법이 숨 쉬고 있다. 하여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다만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세상과 다투지 않으면 세상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불교 입문서로서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불교는 불교 아닌 것도 사무치게 불교다’, ‘폐허가 인간을 가르친다’, ‘세상을 묵묵히 살고 견디다 죽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의 전부다’. 저자의 주옥같은 문장들이 책 곳곳에서 빛난다.
*지난 7월 책의 저자 한형조 교수가 이른 나이에 타계했습니다. 늦게나마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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