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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Aug 06. 2024

盛夏鬼詩 성하귀시

이 폭염에 하필 에어컨이 고장났다. A/S 신청을 했더니 예약이 밀려 보름이나 걸린단다. 한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니 집이 찜통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찬물로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으니 좀 살만하다.

귀신 나오는 시라도 한 편 읽으면 좀 나으려나? <백석 시 전집>을 꺼내 그중 한 편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오금덩이라는 곧


어스름 저녁 국수당 돌각담의 수무나무가지에 녀귀의 탱을 걸고 나물매 갖후어놓고 비난수를 하는 젊은 새악시들

- 잘먹고 가라 서리서리 물러가라 네 소원 풀었으니 다시 침노 말아라


‘오금덩이’라는 지명이 있던 모양이다. 마을 이름일 수도 있다. 어스름 저녁, 마을 색시들이 서낭당에 모여 있다. 돌담에는 사자 死者의 생전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어 놓고, 젯밥까지 차렸다. 제사를 지내주는 이 하나 없어 귀신은 단단히 화가 났다. 마을에 생긴 이런저런 흉사가 다 그 귀신이 조화를 부린 탓이다. 마을 아낙들이 간원한다.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마음껏 드시고 그만 노여움을 푸시라.


벌개눞 역에서 바리깨를 뚜드리는 쇠ㅅ소리가 나면

누가 눈을 앓어서 부증이 나서 찰거마리를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피성한 눈숡에 저린 팔다리에 거마리를 붗인다


벌건 늪 언저리에서 주발 뚜껑을 두드리는 쇳소리가 들린다. 쇳소리를 내서 찰거머리를 유인하고 잡는 특이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퉁퉁 부은 눈꺼풀에, 피멍이 든 팔다리에 찰거머리를 붙인다. 이곳은 찰거머리를 약으로 쓴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 유난히 많은 수상한 마을이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깔이며 방요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레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여우가 우는 밤이면 밤잠 없는 노인네들이 일어나 붉은 팥을 키질하면서 오줌을 눈다. 팥과 오줌 둘 다 사귀 邪鬼를 쫒는 사물이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는 다음날 반드시 흉사가 생긴다. 흉사란 대개 젊은이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의미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이해를 돕는답시고 시를 풀어 쓰는 것은 사실 가당찮은 짓이다. 더군다나 백석이다. 백석의 서북 방언은 쉬 접근할 수 없는 울타리와 같다. 그래도 서너 번 천천히 읽다보면 잘 발효된 우리말, 특히 ‘북방 정서’의 곰삭은 맛이 우러난다. ‘절창’이라 불리는 백석의 시가 여럿 있으나 이 시는 특히 한여름에 제격이다. 시를 읽다 보면, 백석은 시인이라기보다 무당, 시는 귀신을 물리치는 주문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읽는 동안 어떤 이는 옅은 귀기나 한기를 느낄 것이다. 심약한 사람의 경우, 여우 울음 소리까지 환청으로 들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직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 더위를 잠시 쫓을 수만 있다면, 귀신이 볍씨를 까먹을 때 낸다는 그 소리라도 진심 듣고 싶다. 이래저래 무더운 여름날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백석

#오금덩이라는_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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