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파파

by NJ

#긴글주의 #지루함주의


- 요한 바오로 2세, 친구 親口


교황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엎드린 채 땅에 키스하는 모습이었다. 1984년 봄, 교황은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췄다. 가톨릭 용어로 이른바 친구 親口, 방문국과 그 나라 국민에 대한 존경, 사랑, 축성의 의미하는 행위였다. 그 장면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게 부복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는 공항 환영사 첫 일성으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논어의 한 구절을 서투른 한국어로 발음했다. 최초로 이루어진 교황의 방한은 국가적 경사였지만, 동시에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 정권을 바티칸이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어 일부 민주 진영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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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내의 정치적 상황은 암울했다. 집권 세력의 폭정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고, 그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열기도 대학가를 넘어 노동계, 종교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남미의 정치적 상황도 한국과 유사했다. 70년대 전반에 걸쳐 미국 CIA와 국무부를 등에 업은 군부 쿠데타가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등에서 발생했고, 군사 작전이 성공한 이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많은 좌파 인사, 반체제 인사들이 소리 소문 없이 납치, 고문, 암살되거나 실종됐다.

- 베네딕토 16세 vs 해방신학


남미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은 절대적, 상대적 빈곤, 불평등, 일상적 공포가 극심했던 시기에 탄생한 새로운 신학적 방법론이었다. 그것은 ‘성전에 갇힌 복음’을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자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했고, 사회 정의와 해방을 위한 ‘실천적 행동’을 주요 기치로 내걸어, 고통받는 ‘제 3세계’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기관총을 사제복 안에 숨긴 채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이미지는 뒤틀리고 일그러진 80년대 남미의 정치 상황과 저항적, 전투적인 가톨릭교회의 풍경을 우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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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방한할 무렵 신문, 방송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 중에 해방신학의 대표적 주창자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가 있다. 그때 그는 바티칸의 소환 명령을 받은 상태였고, 과연 그가 소환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해방신학이 제기했던 신학적 관점을 바티칸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세계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거칠게 요약하면,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신부의 징계를 최종 추인한 이가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고, 신부의 소환과 징계를 주도한 인물이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 훗날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잇는 베네딕토 16세였다. 결국 보프 신부는 1985년, 1년간 ‘침묵’하라는 바티칸의 징계 (Public Silence)를 받는다. 일체의 미사 집전, 강연, 저술 활동을 금했으므로 사실상 파문에 버금가는 중징계였고 보프 신부는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만다.


- 보수와 진보,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될 때부터 그 일관되고 짙은 보수 색채로 인해 신도, 비신도 가릴 것 없이 우려를 자아낸 인물이었다. 그의 치세하에 있던 바티칸은 큰 이슈 없이 대체로 평온했으나, 2013년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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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직인 교황의 생전 퇴위는 거의 전례가 없는 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그가 돌연 교황직에서 자진 사퇴한 것이다. 베네딕토는 이른바 ‘명예 교황’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문제의 인물’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가장 보수적인 인물의 후임으로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인물이 교황이 된 것이다.


역사의 주요 장면에는 자주 아이러니가 개입한다. 교황이 되기 1년 전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였던 프란치스코는 신앙에 회의를 느껴 주교직에서 사임하기로 하고,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교황 베네딕토를 예방한다. 뜻밖에도 그 자리에서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대주교 사임을 수리하는 대신, 자신의 교황직 사임 계획을 밝히며 조언을 구한다.


이들은 여러 날에 걸쳐 산책, 식사, 논쟁, 고백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 <두 교황>에는 보수와 진보, 전통과 변화, 신념과 회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인물의 내면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결국 베네딕토는 교황직 사임을 결심하고, 프란치스코가 그 자리를 잇는다.


- 프란치스코, 가난한 교회, 세월호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프란치스코는 교황으로 즉위하자,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의 정의와 해방 속에서 시작된다”라고 선언하고, 당시의 ‘해방신학’이 복음의 핵심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 진정성 있는 신앙적 태도였다고 인정한다. 이단이었던 ‘해방신학’이 30여 년 만에 복권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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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재임 기간 중 행했던 미담과 업적, 어록들은 차고 넘친다. 그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 또한 유명한 얘기다. 그가 실행에 옮겼던 진보적 가치 몇 가지만 들더라도 교단 일부로부터 ‘진보’를 넘어 ‘이단’이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느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라는 발언으로 동성 커플의 시민적 권리를 지지했고, 모든 사제와 주교의 아동 성 학대, 추행, 은폐 행위를 직접 바티칸에 신고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으며, 과거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 용서를 구했다.


무슬림, 유대교 등 타 종교와의 화해를 추진해 2019년 숙명적 견원 관계인 이슬람 수니파 최고 지도자와 함께 역사적인 ‘인류 형제애 선언문’을 공동 발표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람을 죽이는 체제입니다”(The economy kills)”. 프란치스코는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금융 중심의 세계 경제질서를 강하게 비판하고,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를 선언하며 사회적 약자와 함께 연대, 동행하고자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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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우리는 세월호 교황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시복식에 참가한 교황을 친견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운집했던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가 손을 잡고 위로하며 같이 슬퍼했다. ‘고통받는 자에게 정치적 중립이란 없다’, 그가 남긴 이 말은 방한 기간 내내 가슴에 달고 있던 노란색 리본만큼이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지난 4월 21일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선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선생복종정로 善生福終正路’의 약자로 ‘착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는 길’이라는 뜻의 가톨릭 용어다.


누가 종교의 핵심 기능을 애도라 했나. 한 번도 종교를 가진 적 없는 무신론자지만, 그 어떤 종교 지도자보다 착하고 겸손했던 빈자이자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한다. 오늘 그의 장례식이 열린다. 멀 길 가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굿바이 파파.


※ 사족

-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후 지난 시절 조국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에 의해 행해진 ‘더러운 전쟁’에 사제로서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 몇 년 전 교황이 참석한 바티칸 공개 미사 중 신도 한 명이 반가운 마음에 교황의 옷소매를 잡아끌자, 순간 버럭 짜증을 냈는데, 이 또한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공식 사과했다.


#프란치스코_교황

#해방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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