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코'와 함께 춤을

by NJ

‘호모 소파쿠스’. 하루 종일 소파에서 빈둥대는 나를 빗대 만든 아들의 신조어다. 소파는 나의 서재이자 극장, 술집이자 침대다. 며칠 전에도 소파에 누워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는데, 아니 이게 누군가. 이홍렬, 십수 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다. 특유의 커다란 ‘뺑코’는 여전한데 생각보다 그리 늙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천천히 늙기’의 비결이라도 터득한 건가.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찾아 안부를 묻고, 말동무 해주고 따뜻한 밥 한 끼도 차려주는 착한 프로그램이다. ‘이 양반도 만만치 않은 나이일 덴데..’. 혼잣말을 하며 검색하니, 역시 진작에 일흔을 넘겼다. 괜히 일흔 나이를 '고희'라 하겠는가. 고희는 한자로 ‘옛 고(古)', ‘드물 희(稀) 자를 쓴다. 나이로만 치면 일흔 넘긴 노인이 여든 넘긴 노인을 위로하는 자리지만 TV 속 이홍렬의 모습은 기껏해야 여든 줄 노인의 아들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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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젊은 시절에도 일과 유흥에 찌든 몸을 주말 내내 소파에 의탁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일관되게 ‘호모 소파쿠스’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가끔 아이들과 소파를 공유했고 TV를 보며 더러 깔깔 웃을 때도 있었다. <이홍렬 쇼>도 그중 하나였다.


쇼의 여러 코너 중 게스트와 함께 만드는 요리 코너 <참참참>이 생각난다. 말이 요리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야식이다. 재료를 소개하고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시식하기 전, 언제나 게스트와 함께 가볍게 춤을 췄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기 전, 요란한 캐릭터 분장을 하고 채널 고정을 유도하는 ‘알비백’ (I’ll be back) 한 줄 대사도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개그 이력 중 <귀곡산장>의 할머니 배역도 빼놓을 수 없다. 캄캄한 산장의 밤 우물가, 점차 ‘공포’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돌연 누군가 뒤에서 밧줄을 타고 짠! 하고 나타난다. ‘뭐 필요한거 없수?’, ‘없음 말랑께롱 께롱 께롱 께롱..’ 하고 사라지던 허무 개그의 원조. 상대 할아버지 역 역시 허당에다 만만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임하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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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담 코너에서 이홍렬이 전했던 아들과의 일화도 기억난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생 아들이 자신의 출생 과정이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다.


- 아빠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어?

- 엄마하고 아빠하고 첫 뽀뽀를 하자마자 네가 ‘빵끗’ 웃으면서 태어났지.

- 그러면 동생은?

- 2년 후에 또 한 번 뽀뽀 했는데 이번에 ‘꺄꿍’ 하면서 동생이 태어났단다.


그때 들었던 ‘빵끗’과 ‘꺄꿍’의 댓구와 울림이 참 좋았다. 귀엽고 흐뭇한 이홍렬표 개그의 전형이다.

전성기 시절, 잡지사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좋은 코미디, 좋은 코미디언이란 무엇인가?’ ‘좋은 코미디언은 재단사와 같다. 지나치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부족하면 재미가 없다. 과잉과 결핍 사이 어딘가에 ‘좋은 코미디’가 있는데 그걸 찾고 잘 자르는 게 기술이다.’ 준비된 것이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코미디의 어떤 '정신'을 보여주는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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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타고난 순발력과 입담으로 여러 방송에서 활동했지만, 최고 힛트 상품은 의외로 몸 개그였다.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이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500원짜리 동전을 콧속에 넣는 것이다. 큰 코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연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체에 이물질을 집어넣는 행위가 시대 감성과 맞지 않는 건 마찬가지. 행위 자체가 민망할 수도, 불편할 수도 있다. 그 ‘과잉’을 상쇄한 것이 이홍렬의 부끄러운 듯한 태도였다. (라고 나는 주장한다) 진행자가 몇 번을 청해야 마지못해, 못 이기는 척, 슬쩍, 그것도 단 한 번만 보여주는 절제된 태도. 어디서나 비아냥대고 시비 거는 사람이 꼭 한 둘은 있는 법이나, 이 '콧구멍 신공'은 그리 큰 저항 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주변 사람 다들 사는 게 만만치 않다고 아우성이다. 살아보니 잘 늙는 것도 못지않게 어렵다. 고희를 넘긴 이홍렬처럼 젊고 온유하게, 밝고 즐겁게 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참참참 그 경쾌한 율동 정도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오늘은 게으른 ‘호모 소파쿠스’도 몸을 일으켜 잠시나마 몸을 흔들어 보려 한다. 마음 내키는 사람은 따라해도 좋다.


무거워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가벼우나 지나치게 경박하지는 않게, 조금 어색하더라도 누가 지켜본다 해도 개의치 않고 각자의 스타일대로 다 같이 참.참.참.


#이홍렬

#뺑코

#참참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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