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사랑, 허무의 얼굴

- 영화 <감각의 제국>을 보고

by NJ

사랑은 재발명돼야 하는데 안락한 자리만을 바라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마음은,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지

<지옥에서 보낸 한철>/랭보


한 여인이 남편의 성기를 거세했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응징이자 보복이라는 게 뉴스가 전한 범행 이유다. 최근에 국내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현실의 치정극이 이렇듯 극단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1930년대 일본에서도 유사 사건이 있었다. 유사한 건 ‘거세’라는 범행의 외형일 뿐, 사건의 동기나 전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사뭇 판이하다. 이 엽기적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오사마 나기사 감독의 문제적 영화 <감각의 제국> (1976), 현실의 잔인한 범행 못지않게 이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 큰 충격과 긴 파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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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치’(남)와 ‘사다’(여)의 적나라한 성애 장면으로 유명하다. 모든 장면은 ‘연기’가 아닌 ‘실연’이었고, 당시 실정법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아 프랑스로 건너가 촬영과 편집을 마무리했다. 이 하드코어 영화가 포르노그래피냐 아니냐의 논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수의 평론가가 감독의 좌파 성향을 들어 이 영화를 ‘반군국주의’ 영화로 보지만 이것 역시 지나친 해석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다. 사랑? 아니 그보다 사랑의 이단성, 사랑의 광기, 사랑의 파멸을 다룬 영화에 가깝다. 문제가 된 영화 속 성애 장면은 아름다운 에로티시즘 미학과 거리가 멀다. 영상은 관음과 노출은 물론 성애의 일반적인 ‘체위’에서 벗어난 ‘사드’(Sade) 적 스펙터클로 가득하다. 일부 관객은 ‘비정상적’ 성애 장면에서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고,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으며 급기야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모든 문제적 작품이 그렇듯 이 영화에 대한 호오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대체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최근 벌어진 국내 치정극의 핵심이 여인의 ‘복수’에 있다면, 영화는 남자 주인공 기치의 사랑법인 무조건적 ‘수용’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사다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녀의 지치지 않는 욕구를 묵묵히 수용한다. 급기야 마지막 남은 자신의 ‘남성’, 자신의 전 존재까지 그녀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바타유의 표현을 인용하면, 기치에게 ‘죽음은 금기의 마지막 영역이고 성은 그 경계를 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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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라는 건 뭐든지 해줄게”

“죽어도 괜찮아?”

“내키지 않지만 네가 좋다면 좋아”

“그래 죽여줄게”


사다는 기치가 흘린 피를 적셔 그의 시신 위에 이렇게 쓴다. ‘기치와 사다, 우리 사랑 영원히’. 며칠 후 사다가 체포됐을 때 그녀는 거세된 기치의 성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은...미친 짓이다. 기치와 사다의 사랑을 쉽게 정의할 수 없으나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에로스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누구는 좋은 사랑, 나쁜 사랑으로 사랑의 위계를 구분할지 모르나, ‘선악의 저편’에 있다는 그것을 특정 기준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은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과 ‘두 사람 마음속에만 살아있는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그 사적인 도덕률이 간혹 사회 윤리에 어긋날 수도, 세상의 보편 질서를 위반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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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강유정은 이렇게 묻는다. ‘이 파괴적인 사랑을 무엇이라 부를까? 결국 당신을 세상에서 파멸시켜야 만족하는 사랑, 봄날의 아름다운 나비와 같이 곱고 부드러운 날개를 손에 쥐어, 나뿐만 아니라 아무도 갖지 못하게 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랑. 만일 죽음이 영원한 소유의 방식이라면, 그 사랑은 온전한 것일까, 그렇지 못한 것일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치의 얼굴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그것은 현실의 쾌락 뒤에 숨겨진 깊은 공허의 표정, 사랑과 섹스 너머에 길게 드리워진 지친 허무의 그림자다. 강유정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이 미친 사랑을 대체 무엇이라 부를까? 그래도 사랑이 여전히 아름다운가?


#감각의_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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