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 인환과 수영

by NJ

#문학 #인문학


‘마리서사’ 茉莉書肆 라는 이국적인 이름의 서점이 있었다. 시인 박인환이 1945년부터 몇 년간 종로에서 운영했던 책방이다. 시인 김수영도 당시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 화가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 김수영이 다섯 살 연배이긴 했지만, 그들은 이곳을 아지트 삼아 친구로 교우했고 훗날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박인환은 서른이 못돼서 알코올성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김수영은 마흔일곱 나이에 버스에 치여 비명횡사했다. 생몰 연대가 다르듯 둘은 시적 지향도 취향과 품성도 달랐고 평단의 평가 또한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박인환은 말 그대로 댄디였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늘 깨끗이 손질된 양복을 입었고, 쌀쌀한 날에는 머플러와 바바리코트를 걸쳤다. 여성 팬으로부터 선물 받은 와이셔츠를 차마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져갈 수 없어 집 근처 개천에 몰래 버리기도 했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미국과 프랑스를 무한 동경했고, 그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당시의 시궁창 같은 현실을 허무주의와 퇴폐적 낭만으로 포장했다.


반면 김수영의 성정은 거칠고 난폭했다. 술을 마시면 폭음했고 난폭한 주사와 행패로 인해 자주 주변에 민폐를 끼쳤다. 거리에서 우산대로 아내를 매질하기도 했다. 회한과 숙취의 통증 속에서도 그는 쓰린 배를 움켜쥐며 시를 썼다. 그에게 시는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가 바라본 곳은 먼 이국이 아니라 진창 같은 현실이거나 회피할 수 없는 조선의 ‘더러운 역사’였다.


그의 대표적 이미지 ‘난냉구’ 사진을 보면, 깡마른 얼굴에 정신만이 살아있는 듯 강렬한 눈빛만이 오롯하다. 평탄치 못한 가정사와 악몽처럼 끔찍했던 거제 포로수용소를 거치고도 그는 기어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시를 썼다.


아내와 섹스하면서 시를 썼고 (성), 생계를 위해 닭과 토끼를 기르면서도 시를 썼다 (양계 변명, 토끼). 설렁탕집에 갔다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주인 여자에게 욕하면서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오네스코를 번역하는 와중에도 (시작 노트 7) 그는 늘 시어를 구상하고 다듬고 그것을 시로 옮겼다.


확언할 수 없으나 그는 ‘네에미 씹’, ‘미국 놈 좆대강’, ‘개좆’ 등과 같은 비속어를 시어로 차용한 최초의 시인이었다. 혁명 후 독재자 이승만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직선의 산문가’였으며, 상징과 운율 없는 명징한 산문도 탁월한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아방가르드 시인이었다. 여러 편의 시 속에서 지질한 자기 모습을 그대로 시연하여 한국 문학사에 둘도 없는 자기모멸의 달인으로도 불렸다.


김수영과 박인환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천양지차다. 박인환에 대해 새롭게 쓰인 평전이나 평론은 드문 반면, 김수영은 지금도 끊임없이 재해석, 재평가되어 도서관의 서가를 지속적으로 채우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박인환의 시어를 ‘박래어’(수입 언어)라고 평가절하했고, 다른 비평가는 “30세에 김수영은 다크호스였지만, 박인환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30세에 ‘아메리카 이미지’를 쓴 김수영은 47세에 우리 현대 시사의 일급 시인이 되었지만, 30세에 ‘세월이 가면’을 쓴 박인환은 세월이 가도 ‘목마와 숙녀’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김수영 자신도 한몫 거들었다. 박인환을 향한 그의 평가는 친구 사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거칠고 모질었다. 박인환 생전에 김수영은 그를 가리켜 ‘정신은 없고 코스튬만 있다’ 라거나 ‘일본말도 서툴렀고 조선말도 제대로 아는 편은 못되었다’고 비아냥댔다. 그의 사후에는 ‘그처럼 재주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라고 폄훼했다. 사자명예훼손에 버금갈 정도의 수위다. 그러나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내뱉은 욕도 듣던 욕도 세월이 가면 윤곽과 형태가 무디거나 흐릿해진다.


작년 이맘때 느닷없이, 정말 느닷없이 박인환이 생각나 망우동 그의 묘역을 찾았다. 가난한 시인은 죽은 다음에도 가난한지 그의 묘역은 초라했고 시비는 낡고 허름했다. 시비에는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갈수록 머리의 총기 대신 마음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게 된다. 그래서일까. 특히 가을이 되면 박인환의 신파가 가슴을 흔들 때가 있다. 그의 묘역에서 잠시 머물 때 문득 스쳐 간 생각은 이렇다. 거칠고 강한 것보다 여리고 약한 것이 더 깊게 패고 더 오래 가리라는 느낌. 단 한 편의 미숙한 시로 박인환은 이미 김수영의 수많은 절창을 뛰어넘었다는 예감. 만약 멸하지 않는 시가 있다면 B급 감성의 센티멘탈한 시 한 편이 그중 하나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그런 것들이다.


사족 : 서점 ‘마리서사’의 ‘마리’는 박인환이 좋아했던 화가 마리 로랑생에서 따왔다. 그곳에서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로랑생의 화집을 보는 그의 모습이 가끔 그려지기도 한다.


#마리서사 #박인환 #김수영


keyword
이전 01화이파네마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