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보사노바
브라질 하면 대부분 축구나 펠레를 떠올리겠지만, 그것 말고도 브라질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여럿 더 있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이구아수 폭포, 광란의 리우 카니발, 코파카바나 해변의 태양과 바다가 그것들이다. 누구는 브라질의 3S (Samba, Sun & See, Soccer)에 섹스를 추가해 브라질의 ‘4S’라 하고, 네 번째 S야말로 ‘진짜 브라질’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최근엔 지구 깡패 트럼프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늙은 룰라의 모습이 자주 눈에 밟힌다.
이런 것들 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보사노바다. 매년 여름, 전 지구를 브라질풍 리듬으로 살랑살랑 흔드는 바로 그 음악이다. 재즈는 이곳저곳을 유유히 떠돌다 햇볕 뜨거운 브라질에서 삼바를 만나 보사노바가 됐다. 널리 알려진 데로 보사노바의 대표곡은 ‘이파네마 소녀 (The girl from Ipanema)’. 우리 대부분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졌고 지금도 여름 내내 온 세상이 듣는 노래이며,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필경 남아있을 그런 노래다.
‘늘씬하고 까무잡잡한, 젊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파네마 소녀가 걸어가네!
그녀가 지나가면 모두들 ‘아..’
그녀가 걷는 건 마치 삼바 같아
시원하고 부드럽게 한들거리며 걷는 모습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내 마음 전부를 그녀에게 줄 수 있는데’
내 개인 블로그에는 이 노래에 대한 어설픈 감상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벌써 15-6년 전에 쓴 글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솨’ 쓸려갔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까지 덤으로 들린다. 낮고 반복적인 그 리듬의 배후에는 끝없이 펼쳐진 해변, 프러시안블루 빛 바다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이 있다. 해변에 늘어선 조팝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 한 소녀의 머리카락도 덩달아 찰랑거린다. 소녀의 걸음걸이에는 삼바 리듬이 실려있다. 사람들이 보내는 관음적 시선을 그녀는 알기나 할까? 한순간 거친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고 부서진 포말이 바람에 실려 소녀의 온몸에 쏟아진다. 이 완벽한 한여름의 정오, 그녀의 눈부신 육체는 신들의 성전, 판테온이다.
어떤 음악은 세상을 흔들고 어떤 노래는 목청껏 소리 내 외치지만, 이 노래는 그저 세상의 표면만을 가볍게 스친다. 서사나 의미 따윈 없어도 좋다. 야자나무 아래 비치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테킬라 선라이즈 (T. Sunrise)’ 한 잔이 놓여있다. 더군다나 그 앞에는 아름다운 한 소녀가 엉덩이를 흔들며 모래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40대였으니 비교적 젊었고 그만큼 미욱했던 시절이었다. 바다와 태양과 선라이즈의 계절이 서서히 저물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 소녀의 육체에 투사했던 시시껄렁한 에로스와 열정은 어디에 있을까?
이 노래를 다룬 하루키의 소설도 하나 있다. <1963/1982 이파네마 소녀>라는 제목의 손가락 장편이다. 1963년 이파네마 해변에서 처음 만난 후, 2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재회한, 한 소녀에 관한 얘기다. 말하자면 그 소녀는 20년 동안 쉬지 않고 ‘마지막 남은 레코드 한 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던 것’이다. 하루키가 소녀에게 묻는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 발바닥이 뜨겁지 않아요?”
“괜찮아요. 나는 ‘형이상학적 발바닥’을 가진 유일한 소녀거든요. 한번 보시겠어요?”
그녀의 발바닥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희미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까지 굉장히 형이상학적이었다.
아마도 하루키의 소설을 펼친 채 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들으면 소녀의 실체가 어렴풋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녀가 지나갈 때 나는 미소 짓지요
그러나 그녀는 결코 나를 보지 않지요
결코 나를 보지 않아요'
안타깝게도 소녀는 우리의 미소와 눈빛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앞만 보고 걷는다. 사실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소녀는 늙지 않는 관념적인 존재,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니.
평생 듣고 또 들었지만 이제 이 노래를 들으면 ‘선다우너 (Sundowner)’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해 질 녘에 마시는 한 잔의 술’. 황혼의 노을이 깔린 이파네마 해변, 그 일몰의 풍광 또한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도 미련인지 주책인 지 이 노래가 들려오면, 소녀의 안부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슬쩍 뒤를 돌아보게 된다.
Tall and tan and young and lovely...
#아스트루드_질베르토 #이파네마_소녀 #스탄_겟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