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축제

<프리다 칼라 전> 관람 후기

by NJ

<프리다 칼로 전>을 관람한 건 애초 일정에 없는 일이었다. 저녁 모임까지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사이 그림 구경이나 하자고 형뻘 되는 친구 D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가끔 마주치기는 했으나 그녀를 직관하기는 처음이다. 서둘러 전시장인 부산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알려진 대로 프리다 칼로는 미술사에서 예외적이고 비교 불가능한 사건이다. ‘고통을 직설적으로 화폭에 담은 건 그녀가 유일하다.’ 총 서른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인생의 절반을 침대에서 보냈으며,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조차 온전히 행복했던 날이 많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이 ‘자유’라는 뜻의 스페인어 ‘프리다’(Frida) 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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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진 기둥>, <추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그녀의 대표작 <부러진 기둥>이다. 시인 천양희가 ‘보고 있노라면 내 뼈가 자꾸 부서진다’는 그 작품, 열여덟에 겪은 치명적인 교통사고 직후 그린 그림이다. 척추를 상징하는 기둥이 그녀의 육체를 좌우로 분할하고, 수십 개의 못이 온몸에 박혀있다. 언뜻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연상된다. 초점 없는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으나 봉긋이 드러난 그녀의 젖가슴은 여전히 관능적이다.


이 외에 비교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슴>, <두 개의 프리다>, <추억>, <헨리 포드 병원> 등 주요 작품이 전시장 벽에 걸려있다. 그녀의 자화상도 이번 전시작 50여 점 중 열네댓 점이나 된다. 프리다 자신이 말했듯 그녀의 모든 그림은 사실상 제각기 다른 형식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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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추억>은 세계적인 벽화 화가였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여동생과의 불륜이 발각된 후 그린 작품이다. 심장은 뻥 뚫려있고 동생과의 옛 추억을 암시하는 교복은 뒤편에 사체처럼 걸려있다. 흔히 그녀가 겪은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남편 디에고의 간단없는 외도 탓으로 돌리지만, 그 방면으로는 그녀 또한 그 못지않은 ‘선수’였다.


디에고에게 섹스가 ‘일종의 악수’였다면, 프리다에게 그것은 ‘고통의 해독제’였다. 조각가, 배우, 사진작가, 남편의 모델은 물론 아버지 절친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마음에 드는 상대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전시장 내에서 그런 내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서 프리다는 억압적인 남근 신화의 피해자이며 희생자, 고통받는 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 레온 트로츠키


그녀의 숱한 파트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풍운아 레온 트로츠키다.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트로츠키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의 멕시코 망명을 주선한 이가 디에고 리베라였다. 망명 초기 프리다의 집에서 기거하던 중 트로츠키는 공교롭게도 그녀와 눈이 맞는다. 그 때문인지 디에고와 트로츠키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거주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 지 오래지 않아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프리다 칼로가 트로츠키에게 헌정한 <트로츠키에게 바친 자화상>은 물론 <마르크스에게 의지하는 프리다>, <공산당 가입증을 든 자화상>과 같이 그녀의 이념적 지향을 드러낸 작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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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부적 혹은 주이상스 (Jouissance)


고통의 아이콘, 고통의 베테랑, 고통의 백과사전. 그녀에게 붙는 고통의 수사는 언제나 최상급이다. 그 고통의 화풍은 의학 도감의 해부도를 연상시킨다. 노출된 장기, 부러진 뼈 그리고 태아와 자궁의 모습까지 드러낸 그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만큼 문명에 순치된 내 연약한 심미안을 불편하게 한다.


고통의 ‘처리’ 방식도 생경하다. 겨우겨우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고통은 목 안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것이다. 그것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은 미학적으로 어색하고 윤리적으로 부당하다. 하긴 그래서 프리다 칼로인지도 모르겠다.


한 비평가의 분석은 시사적이다. ‘그녀는 고통을 이겨내는 자기 모습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역할에 몰입했다.’ 이를테면 프리다에게는 고통과 뒤섞인 나르시시즘적 쾌락, 고통을 향한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희열이 고통이 되고 고통이 희열이 되는 이상한 영혼이 인간이므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신체적인 고통을 만들어 내거나 그것을 과장하는 정신질환인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았다는 견해도 제기한다. 이런 의견은 물론 그녀의 예술을 나쁘게 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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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감내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에 처했을 때 사람은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말하자면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절대자를 향한 기도의 형식이고 그림 자체는 고통을 물리치려는 부적이라는 것. 그녀는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했고 동시에 부적을 ‘쓴’ 것이다. 부적을 쓸 만큼 절박할 때 ‘미학적 거리’, ‘재현’ 기타 등등의 개념이나 용어 자체는 이미 가당찮은 것이 된다. 이런 접근은 그녀의 예술을 좋게 말하는 방식이다.


전시회장 출구에는 그녀를 묘사하는 인용구들이 한쪽 벽면 위에 가득하다. D가 핸드폰을 꺼내면서 내게 포즈를 취하라는 주문을 한다. 벽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이 ‘희망의 아이콘’, ‘초현실주의 화풍’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역시 자본은 힘이 세다. '70년 대의 페미니즘이 무명에 가까웠던 그녀를 세상에 알렸다면, 그녀의 고통까지 번듯한 상품으로 만들고 시장으로 유통한 데는 무엇보다 자본의 힘이 컸다. 소더비 경매를 몇 차례 거치면서 그녀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이제 그녀와 무관한 ‘희망’과 ‘초현실주의’까지 덤으로 끼워 팔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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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여 만세


전시장 마지막 작품은 프리다 생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인생이여 만세>. 그림 중앙에는 빨갛게 잘린 수박들이 놓여있고 그중 하나에 ‘Viva la Vida 1954’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죽기 8일 전에 완성한 작품이므로 그녀의 예술적 유언이라 할 수 있다. 프리다의 그림을 볼 때 담담했던 마음이 저 문구를 보니 비로소 무언가 짠한 느낌마저 든다.


“형님, 저 그림 보니까 내가 일전에 만든 한 줄 문장이 생각나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인간은 비루하나, 인생은 아름답다.’ 어때요, 멋지지 않습니까?”

“인간이...비루하다..흠, 비루하다..”

호응까지 기대하진 않았으나 D의 응답 아닌 응답이 긍정인지 부정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한 시간이 채 못돼서 ‘고통의 축제’는 끝났다. 6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인생이 만세인지 만만세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고통이 뭔지 기억조차 희미하니 젊은 시절에 품었던 삶에 대한 열망이 진작에 사라진 탓이다. 나는 늙은 말처럼 눈이 흐리고 순해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즐거움이건 슬픔이건 전부 소소한 것들이다. 혹시 다시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명랑하게 버틸 수 있는 소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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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우수와 퇴폐, 엷은 감상으로 늘 조금씩 젖어 있는 이곳은 항구도시 부산. 바닷가 근처 광안리 횟집에서 그녀의 고통을 흉내 내듯 작은 소리로 혼자 발음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


사족 : ‘고통의 축제’는 시인 정현종의 시 제목이다. 시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축제주의자입니다. 그중에 고통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고.’


#프리다_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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