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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된 우리 가족

15화.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by 딩끄적

가족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교하면 늘 엄마가 집에 있었고, 저녁때면 집 안 가득 맛있는 냄새가 났고, 거실에서는 TV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잘 시간이 되면, 야자를 마친 언니와 오빠가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 항상 그렇게 함께할 줄 알았다.


중학생이 되던 해, 언니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언니는 집을 떠났고, 언니와 함께 방을 쓰던 나는 평일에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내 방이 없었기에,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하지만, 언니 없이 그 공간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언니의 기숙사에 짐을 옮기러 가던 날, 나도 부모님을 따라 함께 갔다. 부모님과 돌아오는 길, 혼자 뒷자리에 앉아있으니 이상하게 외로웠다. 기억 속엔 언니가 늘 함께 있었다. 그런 언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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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언니와 함께 자던 큰 침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 침대에서 혼자 자야 한다. 침대가 운동장처럼 더 크게 느껴졌고,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잠들기 전, 이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아마 이불속에서 조용히 울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주말마다 집에 왔지만,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져 지낸 나는 언니가 항상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오빠가 군대에 갔다. 언니가 돌아오고 가족이 다시 모인 것도 잠시, 이번엔 오빠가 떠났다. 물론 오빠도 떠나기 싫었을 것이다. 오빠가 훈련소에 들어가던 날, 나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잘 다녀와"라고 인사를 전했다. 그때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여행 가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오빠의 모든 소지품이 소포로 도착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조용히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시스템에 불만을 느꼈던 것 같다.


오빠의 첫 휴가 날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오빠를 데리러 가는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저 멀리 부대에서 걸어 나오는 오빠를 보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추운 겨울, 고생하는 오빠가 안쓰러워 처음으로 오빠 귀에 손을 대고 "춥지? 괜찮았어?"라고 물어봤다.

오빠가 군대에 있는 내내 '내가 고3이 되어도 좋으니 오빠가 빨리 제대했으면 좋겠다'라고 기도했었다.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고, 떨어져 봐야 안다더니. 정말 그랬다.


오빠가 군대에 있는 동안, 아빠가 외국으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 공항에서 아빠를 웃으며 배웅했지만, 아빠가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세 모녀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졌던 허전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이제 우리 집엔 여자 셋만 남았다'는 사실이 허전하고, 슬프고, 어쩐지 조금 무서웠다. 자기 전, 현관문단속을 특히 열심히 했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제 우리 집엔 남자가 없으니까. 아빠와 오빠의 존재가 그렇게 든든했던 줄을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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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은 금방 적응하게 된다. 우리는 아빠와 오빠가 없는 것에 무뎌졌고,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빠와는 매주 주말마다 통화했고, 오빠는 때가 되면 휴가를 나왔다. 오히려 여자들끼리 있을 때의 편안함에 물들어갔다. 그 편안함에 젖어들 무렵, 오빠가 제대했다.


가족은 언제나 한 지붕 아래 함께하는 거라고 믿었다. 어렸을 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떨어져 살면서 알게 되었다. 함께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걸.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오빠가 제대하고, 우리 가족이 다시 모였을 때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편안함을 찾았던 우리에겐 다시 맞춰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결국 금세 예전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가족이 되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란, 서로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늘 함께 하는 존재라는 걸 그 시절의 나는 조용히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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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멀어진다고 마음까지 멀어지는 건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몸이 멀어진 만큼 마음도 멀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실천하려 하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져 살았을 때 속상했던 기억들이, 아직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나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없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가 진짜 나의 독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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