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엄마가 버텨온 시간의 무게
힘들고 난감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엄마를 찾았다.
- 엄마! 여기 벌레가 있어!
- 엄마! 이거 어떻게 해?
- 엄마! 줄무늬 티가 없네! 안 빨았어?
- 엄마! 나 열나나 봐. 머리가 너무 아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어려운 일들은 엄마가 모두 도와줬고, 아플 때마다 항상 곁을 지켜주었으며,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강하고 멋진 해결사 같았다.
아빠 사업이 잘못되어 큰 일이 있을 때도 눈물 한번 보이지 않던 엄마. 엄마는 당연히 강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엄마니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강하니까.
그런 엄마의 흐느끼는 눈물을 본 것은 내가 대학생 때였다. 처음으로 높은 층수의 집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는 항상 저층에서만 살았었기에 높은 층을 살아본 적도 없었고, 우리가 살던 동네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갔던 때였다. 엄마는 이사간 집에 머무는 걸 많이 힘들어하셨다.
이사하고 며칠 뒤,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처음 본 엄마 눈물에, 오빠도 함께 뛰어 나와 우왕좌왕했다. 엄마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못했지만, 지쳐 있었다. 낯선 공간 속에서 마음이 자리 잡기 어려웠던 것 같다.
오빠와 나는 방학 중이라 학교에 가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매일 강아지를 데리고 엄마랑 셋이 외출을 했다. 돗자리를 들고 공원에 가고, 마트에도 가고, 여기저기 밖으로 다녔다. 그렇게 엄마는 조금씩 괜찮아졌고, 집에 정이 붙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1년 반 만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이후 아빠의 두 번째 사업 실패의 순간을 겪고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도 처음부터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딸린 식구가 있으니까, 자식들이 있으니까 단단하려고 애써왔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단단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 단단함 속에 지켜주고 싶은 연약함도 보인다.
연세가 드시면서 젊었을 때와는 달리 약해진 모습에, 내가 엄마에게서 느꼈던 강한 이미지는 흐려졌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엄마 역시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연약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강하고 단단했을 거야."
나는 오랫동안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살았다. 처음부터 강하고 단단한 사람은 없다. 살면서 겪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강해질 수밖에, 단단해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세상에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으니까. 그 누구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 거니까.
이제는 반대로 내가 단단해져야 할 차례다.
아름다운 세상을 부모님에게, 미래의 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들을 잘 지키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엄마가 엄마라서 단단해진 것처럼,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단단해지고 싶다.
그렇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사시사철 푸르게 변함 없는 소나무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