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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막내였던 소심한 그 녀석

16화. 따뜻함과 다정함으로 우리를 웃게 했던 예삐

by 딩끄적

우리 집엔 질투쟁이 막내가 있었다. 엄마와 내가 꼭 껴안고 있으면 "나도 껴줘!" 하는 눈빛으로 비집고 들어와서 엄마 품에 안기던 막내. 우리 집 막내는 18년을 함께 했던 강아지, 예삐다.


어렸을 적 나는 동생이 너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삼 남매 중 셋째인 내 밑으로 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없었다. 항상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친구들의 동생을 내 동생처럼 생각하고 마음으로 아꼈다.


아빠 공장에는 '똘이'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다. 똘이가 새끼였던 시절, 우리 집에서 2주일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새끼 때부터 똑똑했던 똘이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날 기억했고, 나는 종종 똘이를 만나러 아빠 공장에 갔다. 6학년의 여름 어느 날, 그날도 똘이를 보기 위해 아빠 공장으로 향했다.


똘이만 있을 줄 알았는데, 공장에는 여러 마리의 개가 있었다. 많은 개들을 보고 놀라움도 잠시. 어느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큰 개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 소심한 그 녀석은 큰 개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그들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잔뜩 주눅이 든 채로. 나는 그 개가 안쓰러웠고, 눈에 계속 밟혔다.


"엄마. 딱 한 달만! 딱 한 달만 키울게. 내가 목욕시키고, 밥도 주고 다 할게. 응? 제발~~"


하루 종일 엄마를 따라다니며 졸랐다. 집에서 동물은 절대 키울 수 없다던 엄마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딱 한 달만이야. 그 이상은 안 돼."


소심하던 그 녀석은 그렇게 우리 집 가족이 되었고, '예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 달만 허락한다던 엄마는 18년 동안 허락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예삐 덕분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우리의 웃음과 눈물은 항상 예삐와 함께였다.

예삐는 소심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섬세함까지 갖춘 아이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홀로 조용히 훌쩍이고 있으면 짱가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말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조용히 핥아준다. 그래도 나의 눈물이 그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매달렸다. 예삐만의 다정한 위로에 눈물을 더 흘릴 때도, 그칠 때도 있었다. 따뜻한 예삐는 나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예삐가 떠났던 마지막 날은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누군가는 고작 개 하나 죽은 것 가지고 그렇게 슬퍼할 일이냐고 나를 비난했지만, 나에게 예삐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었다.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과의 헤어짐은 말로 표현 못 할 만큼의 큰 슬픔이었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녀석은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가족 모두와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예삐의 마지막 모습이 보기 힘들어 다가오지 않았던 오빠는 녀석의 기다림에 조심스럽게 다가와 토닥여주고 출근했다. 예삐는 오빠의 인사를 받고 우리와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됐다는 듯이 숨을 멈췄다.


숨을 멈춘 예삐를 보고 난생 처음으로 감당 못할 슬픔을 마주했다. 숨 쉬는 방법을 잠시 잊었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어설프게 심호흡부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눈물은 쉼 없이 흘렀다. 괜찮은 척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약이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예삐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품에 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 녀석의 눈빛을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너무너무 그리웠다. 그리움을 이겨내기 위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아 짧은 시를 썼다.


너와 함께 꾸는 꿈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꿈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네가 없는 이 현실이 꿈같기도 하고

어느 게 현실이고 꿈인지 오락가락하지만

이왕 꾸는 꿈이라면 너와 함께이고 싶다.


그리움과 간절함을 담아 썼던 시, '너와 함께 꾸는 꿈'.

꿈에서라도 함께하고 싶은 내 강아지.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 그리움의 슬픔보다는 함께했던 추억이 가득하다. 가끔 문득 생각나 보고싶어질 때면 사진을 꺼내 본다. 그러면 행복했던 추억이 떠올라 마음에 온기가 가득해진다.


지금도 나는 가끔 꿈에서 예삐를 만난다. 꿈속에서 예삐를 품에 안은 채,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 내려놓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꿈에서라도 놓고 싶지 않아서. 꿈에서도 그리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 녀석과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올까? 그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예삐는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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