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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모두 사랑이었다

17화. 그땐 몰랐던 마음들

by 딩끄적

모두가 그러하듯, 가족의 사랑은 언제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이렇게 해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해 줄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없었다면 난 올바르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고프다. 계속 먹고 싶은 사랑이다. 엄마의 사랑은 모든 순간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고 3 때이다.


고1 겨울방학, 고2를 코앞에 둔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치료사가 되고 싶은데, 음악을 전공해야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입시를 코앞에 둔 딸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데도, 엄마는 나를 믿고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다. 그렇게 난 2년 동안 피아노 입시를 준비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1시간, 자동차로 30분의 거리였다. 고3 때 엄마는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에 태워다 주신 후 출근하셨다. 수능을 보기 직전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가는 막내딸이 안쓰러워서 엄마는 기꺼이 잠을 줄이셨다. 그리고 한 달 꼬박 힘들게 일한 돈을 막내딸 레슨비로 몽땅 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당연하게 생각했다. 엄마니까.


수능을 보고 대학 원서 접수를 앞두고 피아노를 그만두던 날, 그때 알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난 귀한 레슨을 받았던 것이었다. 엄마에게 꼭 돌려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혼자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엄마가 힘들고 필요했던 그 순간에 지켰다. 엄마의 사랑은 희생이었다.


아빠의 사랑은 뭐였을까. 난 사실 아빠를 떠올리고 글 쓰는 게 어렵다. 분명 아빠의 사랑을 가득 받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빠의 사랑을 떠올리면, 어렸을 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막내라서, 막둥이라서, 막내딸이라서 그냥 무조건적으로 예뻐해 줬던 사랑. 뭐든지 이해하고 넘어가줬던 사랑. 그렇게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아빠였는데. 어쩌다 아빠와 나는 이렇게 멀어지게 된 걸까.


언니의 사랑은 따뜻함이다. 매 순간 엄마처럼 함께였다. 잠을 잘 때도, 목욕할 때도, 만화책을 볼 때도, 어디를 가도. 언니와 함께였다. 언니는 나에게 제 2의 엄마였다. 엄마의 허락과 함께 언니의 허락도 받아야 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쿨하게 허락해 줬지만, 언니가 허락해 주지 않아 놀러 가지 못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사랑이 많은 만큼, 걱정도 많은 사람. 우리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못된 막내 동생은 자기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인데, 언니는 항상 가족들 먼저 생각하는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이기적인 동생을 여전히 귀엽고 예쁘다고 해주는 따뜻한 사람. 언니는 이 나이가 된 나를 두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는 내 힐링이야. 너무 귀여워."


그런 언니의 사랑에 나는 매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잔소리만 할 뿐이다. '이제부터 잘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막상 언니를 보면 그러지 못하는 내가 참 미울 때가 많다.


오빠의 사랑은 든든함이다. 지금도 우리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오빠. 오빠의 든든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20살,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집에서 주말 알바를 했다. 빵집 사장님은 어린 자녀를 둔 40대의 남자 사장님이었다. 마감 알바였던 내게 빵이나 케이크가 남으면 가져가서 먹으라고 주시고, 항상 편하게 잘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11시 퇴근 시간을 앞두고, 술을 드신 사장님이 가게로 돌아오셨다. 퇴근하라고 하시더니, 한 번만 포옹해 봐도 되냐고 하셨다. 그때는 그냥 삼촌 정도로 생각해서, 친구를 격려하듯 가볍게 토닥이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문제였다. 볼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20살의 어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랑 언니에게 말하면 야구방망이를 들고 쫓아갈 것 같았다. 알바 가는 날이 다가왔고, 출근하는 것이 무서웠다. 며칠을 망설인 끝에, 오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다. 오빠는 화가 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택시비 줄 테니까 택시 타고 빵집까지 가서 가게 앞에서 내려. 그리고 건강 상의 이유로 알바를 못하게 됐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나와. 그리고 다시 택시 타고 돌아와. 오늘 알바하지 말고."

이 말과 함께 내 손에 조용히 만원을 쥐어주었다. 그때 오빠의 든든함을 처음 느꼈다.


마지막으로 내 동생 예삐. 예삐는 말 없는 사랑이었다. 다정한 숨결로 우리 곁을 항상 지켜주던 아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항상 함께였다. 어렸을 때는 함께 뛰어놀며, 어른이 되어서는 '난 항상 네 곁에 있어.'라는 듯한 따뜻함으로.


예삐를 보내고 나서 우리는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귀여운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예삐를 다시 한번 그때처럼 곁에 두고 싶은 거라는 걸. 그때의 예삐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크다는 걸.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다 사랑이었다. 그걸 당연하게 받고 있어서 몰랐을 뿐이다. 나는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잘 살지 못했을 거다. 가족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우리 가족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로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이 따뜻한 사람들 곁에서, 그 사랑을 더 자주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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