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위에서 나를 마주하다
#17 글을 쓰지 않는 날의

#17 글을 쓰지 않는 날의 나

by 박동욱

글을 쓰지 않는 날,
나는 묘하게 공허해진다.
무언가 빠진 듯한 하루.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비어 가는 소리를 낸다.

글을 쓰는 건 나에게
단지 문장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그건 감정을 정리하고,
세상을 내 속도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날,
나는 내 감정이 어딘가에 흩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항상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피곤하거나, 마음이 무겁거나,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괜히 노트북만 켜놓고,
문장 대신 커피만 몇 잔 마시다가 하루를 흘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날조차 나는 여전히 글을 생각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본 풍경,
마트에서 들은 누군가의 말투,
창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마음 한편에 늘 남아 있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의 나는
사실 글을 준비하고 있는 나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워두는 시간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조용히 문장이 자라고 있는 시간.

나는 그런 시간을
글의 침묵 기라 부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문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날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무 말도 쓰지 않은 하루였지만,

내 마음속엔 오늘도 조용히 글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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