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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Feb 20. 2024

서로를 향한 기댐과 버팀, 그저 고마울 따름

쇼코의 미소(최정은, 문학동네, 2016)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중략)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나는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었다.

(중략)

"그래. 나는 겁쟁이야.

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

(중략)

쇼코는 그 예의 바른 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 ('쇼코의 미소' 중)


어쩌면 쇼코의 미소는 항상 같았는지도 모른다. 쇼코의 미소를 해석하고 다르게 느끼는 주인공이 존재할 뿐이다. 너무 일찍 방황해 버린 쇼코의 전철을 따라 밟으며 자신의 변화를 마주한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마주한 것은 바로 다를 바 없었던 쇼코의 모습, 즉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였다.


하지만 돌고 돌아 마주했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변화가 아니다. 성장했기에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온전히 이제부터 서로를 향한 기댐과 버팀을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쇼코의 미소'를 시작으로 담담하게 쓰인 다른 여섯 편의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세대, 국적, 사회적 사건(세월호)과 역사적 아픔(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서로 닿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고(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다), 조금씩 이해하며 결국은 서로를 위한 기댐과 버팀으로 나아간다는 서사는 그 자체로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다.


화려한 수사 없이, 수필 쓰듯 담담한 필체와 문장으로 순한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작가에게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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