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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15. 2023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행의 시작.

학교와 나는 확실히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뉴욕에서의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충격, 부적응, 방황, 절망, 동경, 설렘, 꿈, 자극.. 이 모든 단어들에 동시다발적으로 휩쓸려 다녔다. 그 속에서 이도저도 제대로 못 해내는 듯했는데, 놀랍게도 별 탈 없이 졸업을 했고 직장도 구했다. 영어도 처음에 비하면 꽤 능청스럽게 구사하게 되었고, 최고의 학생으로 졸업하진 못했지만 유난한 독창성과 여러 가지 잔 재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취업 비자를 신청한 해는 전례 없이 지원자가 많은 해였고, 이민국은 자격이 되는 수많은 지원자 중 그 해에 할당된 비자 수만큼의 인원을 무작위 추첨하여 비자를 발급하게 되었다. 무작위라니. 친구들과 호기심에 당겨 본 슬롯머신에서조차 1달러도 따 본 적이 없는 불운한 나다. 당연히 추첨에서 떨어졌다. 


미국에 정착하고 싶었던 나에게 체류 문제는 큰 난관이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몇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나 가까운 미래에는 계획이 없던 미술 대학원 진학을 무리해서 앞당기게 되었다. 이듬해 나는 뉴욕 Parsons School of Design의 Design & Technology MFA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대학에 편입했을 때와 비교하면, 대학원 입학 당시 나의 영어 실력, 학업 소화 능력, 문화적 이해도는 눈에 띄게 많이 성장해 있었고, 뭐든 잘 배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반면 졸업 후 다시 취업비자에 도전할 일이 까마득했기에, 꿈과 목표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도록 소박했다. 대학 때보다 질적으로 우수하고 취업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다시 취업 비자에 도전하고 싶었다. 절실하게. 


'애니메이션의 역사'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학업 능력의 발전을 가장 많이 실감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몇몇 작품을 골라 분석/리뷰하는 수업이었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역사에는 문외한이었고 한 번도 작품에 대해 전문가처럼 깊이 있게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없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는데, 의외로 무척 재미있었다. 영어 독해가 많이 늘어서 수업 내용이나 연구 자료들을 보다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작품을 분석하고 나만의 시선으로 생각해 보는 과정이 흥미롭고 즐거웠다.


교수님은 사토시 콘의 작품에 관해 심도 있게 작성한 나의 리뷰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적지 못하고 성의도 없는지 교육자로서 좌절스러운 심경을 토로하면서, 적어도 학교라는 환경 안에서는 독보적으로 잘 쓴 리뷰라는 점을 강조하여 칭찬해 주셨다. 


영어로 뭘 썼는데, 그냥 적당히 통과도 아니고 극찬을 받다니! 제출한 백지 시험지를 도로 내 얼굴에 던졌던 대학 시절 영문학 교수님이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할까, 낙제를 면하기 위해 끙끙대며 붙들고 있던 서투른 오셀로 리뷰의 첨삭을 도와주셨던 귀인분은 이 소식을 들으면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궁금하여 감회가 새로웠다. 


기말고사는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시험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답안을 작성하지 못할 일은 없었지만, 한 두 문제가 헷갈리긴 했다. 시험지를 제출하기 위해 교수님이 앉아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이번엔 백지가 아니니까, 편안하게. 


교수님이 안경 너머로 내 눈을 바라보며 친절하게 물었다. 

"(우리) 제로- 다 잘 썼어?" 

"어.. 몇 문제 헷갈리기는 했는데 잘 쓴 것 같아요!" 

"아 그래... 에이 뭐 한 두 문제는.. 너 정말 리뷰 잘 썼거든! 괜찮아, 괜찮아. A 나올 거야, 걱정하지 마." 


낙제도 해볼 뻔한 사람으로서 사실 뭐 반드시 A학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학점을 잘 받기를 원하고 있는, 살짝 들떠 보이는 교수님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과거의 영문학 수업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과연 이렇게 해피 엔딩이었을까? 힘들이지 않고 대학원을 졸업하여 별 탈 없이 취업비자의 꿈을 이뤘을까? 그럴리는 없다. 


당시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였고 후에 미국 정착의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학업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가성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처럼 대학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선택 과목 수업의 경우, 어렵지 않게 우등생이 될 수 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이미 잘하는 것을 대학원 학비를 내고 다시 배운 셈이기에 효용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면 특화된 대학원 전공 과정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배울 것이 많았지만, 미국인으로서, 혹은 미국인처럼 사고하고 소통하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었다. 대학원 전공 과정이 제공하는 가치를 온전히 내 것으로 하려면, 당시의 내게 없었던 기본적인 한 가지가 1순위로 필요했다. 


무작위 추첨으로 취업 비자가 좌절된 충격이 그대로 남아있던 내게는 상상조차 힘들던 것이었다. 체류신분 등의 제약으로 인한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인식의 자유 - 하고 싶은 일에 꾸준히 몰두한다면 먹고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야망 있는 학생에게 무엇보다 더 어울리는 낙관의 힘.   




Design & Technology라는 전공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디자인과 신기술을 이용하는 능력이 필요한 학위 프로그램이었다. 대학때와는 달리 예술로서의 디자인의 창의성과 완성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신기술을 접목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보기 좋고 혁신성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포트폴리오로 만들고 논문도 작성해야 했다. 


이곳을 졸업한 후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새로운 직장을 구해 취업 비자를 신청할 수 있을지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목표의 전부였던 나에게,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를 구상하라는 것은 꽤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사회 환원 같은 자아실현은 삶의 다른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나 생각해 보는 인간 궁극의 욕구라 하지 않는가. 


적잖이 당황했다. 학교가 원하는 졸업작품은 분명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방향이었지만, 내가 졸업 이후 취업 비자를 위한 취업을 하는 데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교와 나는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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