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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25. 2023

책임지는 법을 배워 리더가 되기.

나의 창작품은 늘 홀로 알아서 관객을 설득해야 했다.

영어는 분명히 늘고 있었고, 미국에서의 학교 생활도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다 능숙한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좌절의 벽에 부딪친 것은, 나의 발전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아서였을까?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미 20년은 뒤쳐진 채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한들 영원히, 충분히 빠를 수가 없다. 꾸준히 나아지는 것만이 최선이다.


그새 타성에 젖어버린 학습 태도가 문제였다. 학업을 수행하는 도중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으면, 공부 방법이나 작업 방향에 관한 조언을 얻으러 다니는 등 의사소통의 창구를 늘려 해결점을 모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나는 익숙하고 마음 편한 방법만을 반복적으로 택했다. 시각적인 소통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작업량을 늘리고 과제물의 완성도를 높이면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언제나 시각 언어가 내 대신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를 바라며 무작정 맡겨 버리니, 창작품이 늘 창작자의 도움 없이 홀로 관객을 설득해야 했다. 책임이 있는 주인은 나인데 말이다. J만큼 압도적인 실력의 디자이너도 아니었던 주제에, 모두 떠넘겨 버렸다.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고 막다른 곳에 몰린 창작품은,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방적인 통보의 수단일 뿐임을 자각하지 못했다. 




시각 언어에 의존하는 예술인들은 어디서나 흔하게 발견되는 편이라, 미국에 거주하는 영어가 취약한 외국인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작업의 결과물이 질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작업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설득력이 떨어지고 적극적이지 못한 경향이 있다. 


결과물이 뛰어나다는 자신감에 굳이 말을 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소통 능력이 발전하지 못했거나, 부족한 소통 능력을 메꾸기 위해 결과물에 더 공을 들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 이런 성향은 일반인들에게, '예술가들은 창의적이지만 말이 어눌해. 똑똑하지 않아. 자기 세계에 갇혀있고 괴팍하지.'같은 선입견 혹은 편견을 심어주곤 한다. 




시각 언어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것은 강력한 힘이 맞다. 학교는 이 부분을 부정한 적이 없다. 균형을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시각 언어를 이용한 기획과 실무에 특화된 전문가를 키우는 대학 교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학원은 우리가 전문가들을 이끌 수 있는 시대의 리더가 되기를 원했다. 


작품이 하는 말보다는 창작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어 했다. 예술가들의 논리 정연한 소통 능력이 부족하여 작품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없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작자가 작품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작품을 홍보하고, 또한 변호할 수 있기를 원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말과 글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여 불특정 다수를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다면? 신기술을 자유자재로 접목시켜 시대를 선도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적수가 없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대학원에서 원한 이상적인 졸업생은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니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후 그 뒤에 숨는 창작자가 되는 나의 관성적인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그 광대한 비전에 마음이 설렜고 지금은 뒤늦게나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방향만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당시 도저히 방향을 맞출 수 없었던 나의 상황도 좋은 예고, 무엇보다도 졸업 후에 일반 취업을 원하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이상적이다. 작품 뒤에 조용히 자리하며 이름을 알리는 세계적으로 유명 예술가들도 많이 있듯, 백 마디 말보다는 질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그렇기에 학교가 원하는 소통법을 깨달은 이후에도 한 동안 고집을 많이 부렸다. '내 방법이 틀린 게 아니야, 너희가 너무 융통성이 없어!'라고 주장하며. 비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이해할 때조차도, 시각 언어의 가치를 모르는 그들이 어리석어 나의 예술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비난하기 바빴다. 그만큼 어렸고, 그만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이전 15화 소통이 무너지니 숨 쉴 자리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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