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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20. 2023

소통이 무너지니 숨 쉴 자리도 사라졌다.

위기에 여느 때와 같은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꿈.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제3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전공 수업에서 각자의 졸업 작품과 논문의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예술가나 문학가는 평생 한 가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상에 전달하려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긍하게 된다. 예술인으로서의 자아를 정립한 이후부터는 중간자의 시선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찾는 일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서 한결같이 가상의 중간세계를 떠돌며 세계관을 탐험하고 창작물을 만들고 있다. 꿈도 현실도 아닌,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한국도 미국도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상상하고 사유하고 사랑하는 안전한 공간 - 그곳을 찾기 위한 여정. 지금 소통에 관한 시리즈를 쓰고 있는 것도 그 여행의 시작점이다. 소통을 향한 갈망이 결국 나로 하여금 다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찾아 나서게 하였으니.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같은 맥락의 주제인 꿈을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으나, 그때는 스스로도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임을 자각을 못할 때였다.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내는 것도 큰 일이던 20대 중반, 자아탐구는 사치였다. 본인이 이유를 모르니 남을 설득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여전히 부족한 영어와 외국인 특유의 이질감 있는 태도 역시 오해와 의문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공격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졸업 작품 주제를 정하라는데 꿈이라고 하는 건 좀 게으른 선택 같다." 

"네가 말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 이미 과거에 시도된 바 있다. 대체 더 차별화가 되는 부분이 어디냐." 

"이게 반드시 네가 해야 하는 이야기인 이유가 뭐냐." 

"이게 어떤 사회적인 가치를 만드는 거냐? 비현실을 이야기로 풀어 뭘 어쩌겠다는 건지?" 


지금 와서 모두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위와 같은 맥락의 질문과 피드백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지엽적이고 악의적으로 느껴지는 질문들도 많았다.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열심히 한 일이 그렇게까지 숨 쉴 틈 없이 후려쳐진 경험은 지금껏 살며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내 보기엔 별 특별할 것도 매력도 없는 주제들도, 유려한 말솜씨와 안정적인 매너로 발표를 마치고 나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래도 늘 그랬듯 영어를 사용한 의사소통과 발표 능력이 문제려니 했다. 전달이 잘 안 되어 이해를 못 하니 쉽게 무시하며 뭉개는 것이라는 결론에 닿자, 경험으로 신뢰하는 해결책을 꺼내 들게 되었다. 나의 무기, 시각적 언어. 




수년간의 미국 생활에서 높은 성공률이 확인된 대응책이었다. '말로 떠들 재간은 없지만, 당신 눈으로 모든 걸 보고 느낀 후 설득당하게 해 줄게'라는 이를 악문 반격. 몇 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의 주제와 비전을 설명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시각 자료를 만들었다. 초기단계엔 요구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결과물이 과연 어떤 것일지를 직관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에는 제대로 만든 스토리보드 같은 시각 자료만큼 효율적인 게 또 없었다. 


이게 웬걸, 아무 소용없었다. 어여쁘고 아름다운 작업물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별 매력 없는 학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재주 좋은 전직 디자이너일 뿐이었다.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공부나 창작에 있어서는 칭찬이 더 익숙하던 삶이라 필요 이상으로 충격이고 상처였던 건지, 정말로 나에게 유독 더 험한 피드백이 쏟아진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 불문, 침대밑에 비밀스럽게 보관해 두었던 나의 소중한 물건들이 생각지 못한 침입으로 모두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진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느꼈다.  




많은 미국인 학생들은 대학원 졸업 후에 연구직, 교수직 혹은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모두 체류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필요로 한다. 


언감생심. 나는 감히 꾸면 안 되는 꿈이라 느꼈다. 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두근거림이 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저런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며 아련한 과거를 회상해보기도 하고, '나도 저런 꿈을 가져보고 싶다.'라는 또 다른 꿈을 꿔보기도 했다. 그렇게 줄곧 끼어들 수 없는 세계에 애매하게 스며보려 노력하는 어설픈 매일을 보냈다. 내가 마주한 것과는 다른 솜사탕 같은 낙원에의 동경을 안고. 


유학생들은 서로 비슷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각자의 형편과 사정, 목표가 무척이나 제각각이었다. 모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미국 대학으로 편입하여 학위를 받고, 일을 하다가 취업 비자 무작위 추첨에 떨어진 후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은 동기 중 나 하나였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나오고 일을 하다가 대학원에 가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었을 텐데, 조금 더 독특한 길을 걷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점점 더 혼자가 되었다. 


뭐, 철새들의 도시인 뉴욕에는 홀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나의 서사는 명함도 못 내밀어볼 영화 같은 인생이 가득하다. 하지만 의문이다. 가상의 중간 세계에 집착하는 이유가 어째서 그때도 보이지 않았을까. 어디에서도 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이 부분에 집중하여 졸업 작품에 사회적 의미를 심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불쌍하거나 약해 보이는 소리 하는 걸 싫어한다. '그렇지 않아, 나는 이곳에 온전히 소속되어 있어.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 라며 고집 있는 현실부정을 했던 걸까? 답을 모르는 고충이니 아무 일 없는 척 자신도 속이는 것이 최선이었겠지 싶기도 하다. 




전공 수업에서 느낀 패배감, 소외감의 원인은 돌이켜 볼수록 명백하다. 학교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채 시작부터 잘못 끼운 단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곳에서 자신을 모르고 있던 나,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학문적 공감을 얻어내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던 소통 능력. 


시각적 언어를 무기라며 들이대었지만 생각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대학원이 정말 원하는 것은 나의 현란한 디자인 실력 같은 것이 아니었고, 그 실력이라는 것도 결국 디자인이 본진이 아닌 동기들에 비해 뛰어나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칼이라며 꺼내어 휘둘러봐야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의 장난감 칼이었으니 말이다. 


'위기는 시각적 언어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안이한 자세로 내달리는 것이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대학 내내 아무리 슬슬 피해 다녀봐도 나를 괴롭히던 영어가 이곳에서 아주 제대로 외쳤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이전 14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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