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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26. 2024

안 쓸 수 없는,‘흑백 요리사로 배우는 브랜딩’

대중을 사로잡은 에드워드 리의 브랜드를 통해 찾는, 브랜드 '최후의 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보실 계획인데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흑백 요리사 (Culinary Class Wars)는 요리를 테마로 한 하나의 리얼리티 쇼 브랜드입니다. 요리 대결 미션에 참여하는 100명의 요리사로 시작하여 끝에는 1명만이 우승하게 됩니다. 2명의 심사위원이 매 라운드마다 그들의 요리를 심사하여 생존과 탈락 여부를 결정합니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나름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고, 개성과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가 흑백 요리사 라는 거대한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설정과 서사 안에서 어우러집니다. 그들은 브랜드의 핵심 요소이자 서브 브랜드 (sub-brand)가 됩니다.


Culinary Class Wars (source: Netflix)


방송이 모든 서브 브랜드를 공평하게 조명하지는 않습니다. 방송의 기획 의도와 서사에 맞는 언행을 더 자주 보일수록 더 많은 분량을 따낼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 이미 유명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최종 편집에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나오게 마련입니다. 월등한 실력과 외모가 있다면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 자극적인 말을 하거나 남들과 다른 희한한 행동을 하면 짧은 시간에 주목받고 기억에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방송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그런 경우, 시청자들과 대중 사이에서 바이럴 콘텐츠(짤, 편집 영상, 대사 발췌 등)로 2차 가공되어 더 큰 인지도를 쌓게 될 확률도 높습니다.


- 미션에서 일찍 탈락할수록 자신을 알릴 기회를 더 많이 잃게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생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브랜드들에게 적용되는 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이미 유명한 브랜드라면 아무래도 관심받기가 더 쉽습니다. 월등한 실력과 외모가 있다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자극적인 말을 하거나 남들과 다른 희한한 행동을 하면 짧은 시간에 주목받고 기억에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노출과 도달률을 높여 유입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이럴 콘텐츠가 생겨날 수 있고, 이는 유입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많은 팔로워와 구독자를 모으는 장치가 됩니다.


-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지 않는다면 알려질 기회도 없기 때문에 꾸준하게 계속해서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송에서도 소셜 미디어에서도, 이 모든 것을 다 해내기 위해 브랜드들은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 모든 걸 다 해낸다 해도, 한 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 정도도 이젠 평범하기 때문이죠. 언제나 ‘차별화’, 그 놈의 차별화가 발목을 잡습니다.


흑백 요리사 에서, 위의 모든 요소들을 충족하고 거기에 차별화까지 완벽하게 성공한 캐릭터라면 역시 에드워드 리입니다. 방송이 끝나고 현재 수많은 팬들이 생긴 상태죠. 차별화된 세계관을 구축하고 서사를 여러 겹으로 쌓아 마지막에 극적으로 터뜨렸기에 그렇습니다.


Edward Lee (Source: Netflix)


미국의 셀럽 요리사다운 교포 배우 느낌의 외형과 언변, 화려한 이력, 깊은 산속에서 밤낮으로 연마하는 무림고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링, 미션 내내 리스크를 안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요리, 거기에 중간중간 이벤트성 불쇼를 하거나 개구지게 웃으며 과장된 장난을 치는 등의 방송 센스까지. 브랜드로서 주목받을 요소는 다 갖추고 나타나신 셈입니다.


그에 더해, 한국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으로 살았던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을 요리에 계속 투영함은 물론이고 언어로도 보여줍니다. 유창하고 정갈한 영어와 서툴고 엉성한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지요. 이런 일관적인 방식으로 쇼 전반에 걸쳐,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인 요리사 에드워드의 정체성은 그의 브랜드 세계관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 세계관 안에서 만들어진 에드워드의 서사는 그의 요리와 이야기를 통해 세미파이널과 파이널 미션에서 진정성을 극대화시켜 공유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1등이 아닌 2등이었지만, 1등보다 시청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고 방송이 끝난 후의 파급력도 현재 대단합니다. 곧 그가 한국에 식당 하나 오픈할 것은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Napoli Matfia (Source: Netflix)


반면 1등이었던 나폴리 맛피아는 1등임에도 불구하고 서사랄 것이 미약합니다.


에드워드에 비해 나이도 한참 어리고 인생 경험도 폭이 좁은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그래도 그의 뭔가가 에드워드의 서사와 함께 엮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을 법도 한데, 패기 넘치고 조금은 오만한 이미지를 쇼 초반부터 일관적으로 심어 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특출난 실력으로 열심히 해서 1등하고도 태도가 오만불손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욕을 먹었죠. 모두의 마음을 훔친 진솔한 진짜 실력자 에드워드에게 버릇없이 대하는 ‘빌런’으로 포지셔닝되어 버린 것입니다.


쇼에는 필요한 장치였지만, 브랜드 개인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죠. 인생일대의 기회일 수 있는데, 자신의 개성이자 대표 서사가 쇼를 위해 각색된 빌런 캐릭터라니!


세계관과 그 안에서 탄생하는 브랜드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달되는가가 결국 많은 브랜드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최후의 한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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