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요
세 번째 이야기 [2024. 3. 11. 월]
스트레스받은 건 당신인데, 왜 나 혼자 먹고 있죠? 남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격무에 시달리다 온 그는 옷깃에 찬 바람을 묻히고 들어왔다. 눈 밑이 검고 웃는 모습에서도 고단함이 묻어난다. 가볍게 한 잔 하자던 그의 손에는 마른오징어와 맥주 두 캔이 들려 있다. 봉지를 받아 들고 먹을 채비를 한다.
마주 앉아 맥주를 딴다. 크고 작은 맥주 한 캔이 나란히 비워진다. 간단한 안주는 어쩐지 또 다른 안주를 부른다. 어쩔 수 없이 배달앱을 켜고 먹을만한 안주를 골라 주문한다. 리뷰에서 배달이 빠르다고 하니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먹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주문한다. 오늘의 메뉴는 매콤한 떡볶이다. 남편과 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아 어묵만으로만 주문했다. 막상 주문을 하고 나니 남편은 졸음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떡볶이 오기 전까지 누워 있을게요. 떡볶이 맛은 보고 잘 거예요.” 그 말은 혹시 잠들면 깨워달라는 뜻.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홀로 거실에 앉았다.
40여 분 만에 음식이 도착했다. 남편을 데리러 큰방에 갔더니 이미 꿈나라 여행 중이다. 깨워서 양치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다 우선은 재우기로 한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와 매콤한 향이 나는 떡볶이를 마주한다. 보통맛으로 시켰는데도 맵찔이인 나에게는 기분 좋게 매웠다. 콧잔등에 맺히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어묵을 건져 먹는다. 운동할 때는 그렇게 땀이 안 나더니 매운 것을 먹으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야속하다.
분명 주문할 때 남편은 “오늘은 스트레스받아서 뭘 좀 먹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홀로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는 걸까. 혼자 먹어도 떡볶이는 맛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닌데 가끔 생각날 때 먹으면 또 맛있어서 “맵다, 매워”하면서 계속 먹는다. 먹다 보니 배가 불러올 정도로 먹어버렸다. 분명 맛만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식욕을 조절하는데 실패했다. 나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남편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오늘 떡볶이가 오긴 오는 거냐며 떡볶이를 찾는다. 그러더니 언제 깨었는지 모르게 다시 잠들었다.
“그대, 오늘 떡볶이는 꿈에서 먹어요. 내가 꿈나라로 보내 놓을게요.”
떡볶이 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떡볶이를 즐겨 먹지 않는데 그 언니를 만나면 꼭 떡볶이를 먹었다. 언니와 함께 건대에서도 먹고, 홍대에서도 먹고, 또 다른 동네에서도 먹었다. 나와 달리 친구는 떡도 잘 먹었고 떡볶이라면 매콤한 떡볶이, 짜장 떡볶이, 즉석 떡볶이 모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런 그녀는 요식업 종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속으로 ‘떡볶이 가게 사장님이면 찰떡이겠다’ 생각했는데, 고깃집 사장님이란다. 하긴 언니는 고기도 잘 먹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랑 차돌박이 떡볶이는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먹으러 가야지.
반쯤 남은 떡볶이를 앞에 두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나는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겠지. 내일의 나는 식욕을 이기기를 바라며 배가 조금 꺼질 때까지 덩그러니 앉아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