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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민 May 16. 2024

전 아마도 변온동물인가 봅니다

관찰일지 8일차 [2024. 5. 16. 목]


휴일에 맞이한 마지막 퇴근길, 어쩐지 감상에 젖어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주변이 소담하고 잔잔해서 좋았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있다는 것도 회사의 장점  하나로 넣어두었다. 퇴사하는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없었지만, 흐드러지게  장미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좋아서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짐을 조금씩 들고 가서 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남아있는 짐 몇 가지와 그동안 수고했다고 주는 사장님의 선물까지 더해져 양손 가득 무겁게 짐을 들려 있었다. 휴일이라 지하철 안은 한산했지만, 가방에 짐에 앉는 것보다 서 있는 편이 나아서 선 채로 목적지에 다다르길 기다렸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집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가버린 상황. 어쩔 수 없이 버스 정류장 간이 의자에 짐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빨개져 있었다. 뻐근한 팔을 돌리며 서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내 짐 주위를 서성이셨다. 이곳은 앉는 자리지 짐을 두는 곳에 아님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짐을 곁으로 조금 치워도 아주머니가 앉기는 비좁아 보였고, 나는 “앉으세요”하며 짐을 들었다. 가벼운 목례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내가 짐을 치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앉으셨다.


내가 원해서 양보해 놓고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주머니를 보니 괜스레 심술이 났다. ‘나 참 못났네. 인사받으려던 건 아니잖아’하고 속엣말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어쩐지 두 팔에 들린 짐이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주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변온동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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