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아끼는 나
나에게는 한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목소리 빼고. 언니와 나는 전화 목소리가 닮았다. 아빠도 헷갈릴 만큼. 하지만 나는 대체로 밝고 대체로 언니는 차분하다. 그런 미세한 차이로 목소리를 구분한다.
언니와는 사이가 좋다. 결혼 전 10년 넘는 시간 동안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대부분 내가 기대는 쪽이었지만. 무거운 짐을 들 때면 제 몫을 다했다. 함께 여행 갈 때마다 캐리어를 끄는 쪽도 나였다. 어릴 때부터 약한 언니에 비해 힘이 셌다. 자라면서 힘은 더욱 세져 캐리어도 번쩍번쩍 잘 들었다. 여행의 들뜸에 무거운 줄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 언니와 오랜만에 여행을 가고 예전처럼 함께 지내니 사소한 일에도 쉽게 웃음이 번졌다. 기껏해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하는 게 전부였는데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많이 웃고 많이 즐거워하며 보냈다. 예전에는 둘이 지내다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여름휴가 때나 보겠네’하며 씩씩하게 돌아온다. 하나 바뀌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언니 물건 중 가져올만한 게 없는지 언니방을 한 바퀴 둘러본다. 물욕이 발동한 것도 있지만, 이건 그냥 의식과 같은 셈이다. 여행지에서 마그넷을 사는 사람의 마음처럼 언니와 함께한 순간을 모으는 거다.
이번에는 언니의 물건을 탐하지 않았다. 지난번 만났을 때 바닥이 드러난 틴트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썼는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 쓰고 있는 동생이 애처로웠는지 새 틴트를 쥐어주는 언니 덕분이다. 언니의 새빨간 틴트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틴트처럼 내 마음도 애정으로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