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다 문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가고 싶어졌다. 곁을 스치는 바람은 차갑지만, 길게 줄 지은 가로수가 예뻐 길의 끝까지 가고 싶었다. 발길을 옮기면서도 속으로 어렴풋이 알았다. 원래 가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도시의 풍경은 건물의 크기만 조금씩 다를 뿐 비슷비슷하니까. 그런데도 색색의 단풍과 바스락거리는 단풍잎이 발밑에서 춤을 추는 날에는, 낯선 길을 마음껏 거닐어보고 싶다. 가로수에 걸쳐진 구름에 감탄하며 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높고 푸르러진 하늘을 만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내 취향의 카페도 발견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한다면 앞으로 산책은 이곳으로 다니겠지.
걷는 것에 대한 감흥이 없어서 예전에는 수목원이나 공원에 가게 되면 나무와 식물을 볼 요량으로 걸었다. 푸르른 나무와 다양한 생김을 가진 꽃은 언제든 봐도 좋으니 수목원에 가면 만보쯤은 거뜬히 걸었다. 하루에 2,000 보정도밖에 걷지 않는 나로서는 10,000보는 정말 열심히 걷는 셈이다.
단정하게 깔아놓은 돌길 위를 걸으니 누군가 ‘이쪽으로 조심히 걸으세요’하고 말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흔한 보도 블록이었으니 어쩐지 융숭한 마음에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걸음을 단정히 살피는 길은 머지않아 뚝 끊겼다. 옆을 보니 한 아파트의 마지막 단지를 막 지나친 참이었다. 단지가 끝남과 동시에 가꾸어진 말간 길은 사라졌다. 뚝 끊긴 길을 보며 어쩐지 다른 사람의 길을 빌려 걷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걸으며 마주친 사람들의 차림새 역시 슬리퍼에 간편한 차림이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누가 봐도 집 앞에 잠깐 나오는듯한 모양새였다. 주민들이 오가는 곳이 맞다는 걸 확인하며, 투박하지만 언제 걸어도 부담 없는 보도블록으로 발을 내디뎠다. 역시 익숙한 것이 좋아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