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도 모르는 채 어른이 되었다

오늘 마음은 울상

by 박수민

어릴 때는 막연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교든 학원이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고, 어쩌다 한 번 빼먹게 되면 엄마 아빠는 물론 선생님들께도 혼이 났다. 학교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학교에는 꼬박꼬박 갔다. 덕분에 초중고등학교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대학 땐 수업은 빠져도 학교엔 갔다. 개근상은 없었지만.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졸업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그렇게 바라는 어른이 되었는데, 자유로울 줄 알았던 어른의 생활은 해야 할 것들로 넘쳐났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있고, 열심히 일할 자유도 내게는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일들에 대한 책임도 모두 내 몫이다. 공부만 하면 됐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한 자유가 넘치지만 그만큼 책임도 뒤따른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다, 회사 가기 싫다를 외치지만 출근해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다. 말은 말뿐이어서 “그렇게 가기 싫으면 그만둬”라는 말하는 남편의 말을 흘려들으며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달라질까. 경제적 자유를 이루더라도 일은 하고 싶다. 부지런하지도 않은데 그런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만 매일 같이 집에만 있는다고 생각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 내 말을 듣던 친구는 “네가 돈 쓰는 재미를 몰라서 그래”라고 했다. ‘아! 돈이 많으면 매일 여행하듯이 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행복해졌다. 그래도 일은 하고 싶다. 대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겠지. 아직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않았으니 마음껏 꿈꿀 수 있다.

어른이 돼서 좋은 건 두 가지 정도다. 어릴 때는 9시 전에 자야했고, 대학 때도 10시까지는 귀가해야 했다. 물론 귀가 시간을 잘 지키던 딸은 아니었지만, 통금 시간은 그랬다. 그런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 밤늦게까지 심지어 외박까지 할 수 있다니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하나 좋은 점 역시 노는 것과 이어지는데, 내 계획에 따라 쉴 수 있고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거다. 이 두 가지 빼고는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을 아직 찾지 못했다.

집 청소도 스스로 해야 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빨래도 설거지도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엄마 아빠와 살 때는 주로 엄마가, 언니와 살 때는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지만 주로 언니가 해줬는데. 이제 그런 것들 모두 나와 남편이 해야 한다. 분리수거는 남편이 하지만, 깜빡 잊으면 산더미같이 쌓이는 게 분리수거다. 설거지도 마찬가지. 집에 있는 주말이면 먹고 치우고, 또 먹고 치우다 하루가 간다. 우리는 주로 배달을 이용하지만 그마저도 설거지는 해야 한다. 안팎으로 할 일이 넘쳐나는데 그런 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다 자란 이상 잘 살아볼 수밖에. 매일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나를 어르고 달래며,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이도록 애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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