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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개구쟁이

by 박수민

두 번째 이야기 [2024. 1. 18. 목]


출퇴근할 때면 버스를 이용한다. 여느 날처럼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는데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탔다.

남자아이는 버스를 탈 때부터 발을 쿵쿵 굴리더니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 불안했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아이의 옆에 앉지 않고 버스 문 앞 좌석에 앉으셨다. 다리가 불편해서 층계가 있는 맨 뒷자리에 앉기는 불편하신가 보다 했다.


뒷자리에 아이가 잘 앉았는지 궁금해서 뒤돌아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날이 흐려서인지 아이는 긴 우산을 들고 있었고, 우산을 들어 나에게 "두두두" 소리를 내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아이에게 "뭐 하는 거야?"하고 묻자, 미안하거나 잘못한 기색도 없이 샐쭉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우산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아이의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뒷자리에는 관심이 없으신 듯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계셨다.


그 후로 그 아이는 별다른 소란 없이 앉아 있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들었다. '주의를 주었어야 했나', 아니면 '아이의 할머니에게 알렸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목적지에 다다랐다. 내가 내릴 때까지도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으셨다. 할머니와 있을 때 아이는 얌전해서 살피지 않으셨을까 얌전한 것과 별개로 뒷자리에 아이가 혼자 앉기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어 버스에서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으셨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나는 버스에서 내린 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아이와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이는 없지만, 개구쟁이 남자 조카가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체력 소모가 큰 지도 잘 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이와 함께 두 사람이 있는 좌석에 앉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그러면 아이가 낯선 어른에게 우산을 들어 총을 쏘는 시늉을 할 일도 없었을 테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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