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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Feb 16. 2023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글을 써 왔다. 유부남 A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과 그가 떠난 후 남은 것들에 대해서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제외하고 건조하고 차갑게 쓴 글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을 많이 썼는데, 사실만을 쓴다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녀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무수히 많은 시간 중에 그녀가 글로 남긴 것들과 글과 글 사이에 남겨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쩐지 나에게는 글로 쓰인 것 보다는 오히려 차마 글로 쓰지 못했던 것들이 더욱 마음에 가깝게 다가온다. 


사랑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지만, 그녀가 남겨 둔 글 사이에서 미루어 짐작해 본다. 매일 매일 반복 되는 시간 속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한달 뒤는 뻔하게 예상되는 날들이다.  그속에서 A와의 만남이라는 사건은 그녀의 삶을 얼마나 생동하게 만들었을지. A가 언제 올지 모르는 날들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이다. 예측할 수 없기에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랑의 기쁨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있지만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말했듯이 그것이 진정한 '사치'가 아닐까.










60쪽 남짓한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였는데, 2시간 반동안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열심히 작성한 토론 논제라서 혹시 누군가 필요할지 몰라서 공유합니다. 




[ 토론 논제 ]


 1.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을 쓰는 과정과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포르노 영화를 보았던 경험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부남과의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 텔레비전에는 디코더가 달려 있지 않아 화면은 흔들리고 대사는 지글거리고 찰랑대는 이상한 소음으로 들려서 마치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계속되는 미지의 언어 같았다….... (중략).....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P9-10)





2. 저자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었는지요?


수술을 마치고 나온 내가 행여나 쓰러질까 걱정이 되어 괜찮다는데도 굳이 가까운 역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따라나선 조산사와 함께 저 다리를 지나갔었다. ‘그때 내가 여길 지나갔지’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허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는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때 내가 여길 지나갔지’ 하는 구절이 나오더라도 미심쩍은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P55)





3. 또한 저자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아니 에르노 [사건] 중 발췌)” 라며 사실에 기반한 글쓰기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4. 저자가 사랑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있습니다. 마치 시간마저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살면서 이렇게 몰두해 본 대상이나 사건, 사물이 있었는지요?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P13)

그 사람은 천천히 옷을 입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양말을 신고, 팬티와 바지를 입고 나서 넥타이를 매기 위해 거울 앞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P16-17)




5. 아니 에르노는 ‘내밀한 것은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 사회적인 것’이라며, 자신의 가장 개인적 경험을 객관화 한 글을 씁니다. 그녀가 문장으로 남겨 둔 것과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겨 둔 것 중에서 개인적 경험과 맞닿은 지점이 있었나요?  


그리고 저녁이되면 같은 종이에 “그 사람이 왔다”고 쓰고 우리 만남의 세세한 사항들을 두서없는 글로 적어두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후에 쓴 두 글의 내용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을 보고는 잠시 멍한 기분을 느꼈다. 두 글 사이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그 사람과 내가 나눈 대화와 몸짓이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것들을 붙잡아두려고 했다. (P15-16)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P52-53)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 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자고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P59)





6. 저자는 나이가 들면서 ‘사치’라고 느끼게 되는 대상이 달라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 그 기준이 달라졌나요?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P66-67)





7.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읽어보고 싶거나 추천 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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