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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28. 2022

여섯 살 조카의 포켓몬빵

어쩌면 보통날 1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조카와 나는 쇼핑메이트다. 동네의 식자재마트는 조카와 나의 단골 마실 장소이자 쇼핑 장소. "이모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식자재 마트 갈까?" 오늘도 조카와 짧은 만남을 약속했다. 


올해 여섯 살이 된 조카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포켓몬빵이다. 정확히 말하면 포켓몬빵을 '사는 일'. 모바일 위치기반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GO> 게임과 투니버스에서 방송 중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로 포켓몬에 대한 이해도가 이미 높은 상황에서 우연히 할머니와 함께 포켓몬빵을 구입했던 경험이 발화점이 되었다. 엄마를 졸라 샀다는 꼬부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한 조카를 마트 입구에서 만났다. 간단한 장을 본 뒤 한 손엔 조카의 손을 다른 한 손엔 쇼핑 봉투를 들고 나오는 길, 


"저 사람 포켓몬빵 번호표 나눠주는 사람이다."


쇼핑카트가 줄지어있는 마트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앳된 직원을 가리키며 조카가 말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조카의 설명은 이랬다. 


 1. 우리 동네 식자재마트에 포켓몬빵이 들어오는 요일은 월, 수, 금.

     대체로 오후 4시 전후에 들어오며, 하루 약 6~70개 정도가 입고된다.

 2. 오후 3시 20분 즈음이 되면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은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그게 곧 줄이다.

 3. 파란 조끼를 입은 마트 직원이 번호표를 순차대로 나눠준다. 번호표 하나당 빵 한 개를 구입할 수 있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번호표를 받아 하나씩 사야 한다.

 4. 포켓몬빵 진열이 완료되면 번호 순서대로 입장한다.

     처음엔 냉동식품이 있는 냉장고 쪽이 포켓몬빵 자리였는데, 최근에 계산대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5. 번호표를 나눠준 직원이 포켓몬빵 옆에 대기하고 있다.

     받은 번호표를 그 직원에게 다시 제출하고 빵을 골라 계산하고 나온다. 보통 초코 빵부터 매진된다.


혹시나 하고 마트를 둘러보며 포켓몬빵이 있을까? 있다면 꼭 사봐야지! 기웃거리던 나와 달리 조카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던 이유가 이거였다. 우리가 방문하는 시간에 포켓몬빵이 없다는 당연한 명제가 있었던 것. 지난 3월 로또 1등을 배출했다는 플래카드를 건 로또 전문점을 지나쳐 조카를 데려다준 뒤 집에 돌아왔다. 저녁엔 던킨에서 잠만보와 고오스 도넛이 나왔다며 엄마랑 먹으러 갈 거라는 신이 난 목소리의 조카와 영상 통화를 했다. 


때아닌 몸살감기로 오후 반차를 냈다. 점심시간을 막 앞둔 월요일의 이비인후과는 환자들로 붐볐다. 코로나19 항원검사 후 진료를 받은 뒤 처방약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약을 챙겨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 노곤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려는데 식자재마트 앞에 핸드폰을 손에 쥔 초등학생들이 몇몇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포켓몬빵이 들어온다는 월요일이고 곧 4 시구나. 사러 나가 볼까? 귀찮은데. 조카 하원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내가 사다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아직 열이 좀 있는데. 몇 번씩 바뀌던 마음은 파란 조끼를 입은 직원이 내 시야에 잡히자 급하게 모자를 집어 들게 했다.


지갑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식자재마트에 당도했는데 상황은 벌써 끝나 있었다. 바닥에 버려진 빵 봉지와 빵을 구했다고 친구와 통화하는 목소리, 가방에서 꺼낸 스티커 뭉치에 새 스티커를 넣는 손동작이 마트 앞을 부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서둘렀던 내가 우스웠다. 곧 조카를 픽업하러 갈 동생에게 혹시나 하고 포켓몬빵을 구하러 가봤는데 못 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돌아가기 멋쩍어 우유 하나를 샀다.


"이모! 포켓몬빵 줄 섰는데 못 샀다면서"

"응. 가보니까 초등학생 형, 누나들이 다 사가버리더라"

"괜찮아. 두 밤 자고 가보면 돼"


월, 수, 금이 되면 포켓몬빵 구입 줄을 서고, 못 사면 아쉬워하고, 스티커 모으는 것에 집중하는 조카지만 월, 수, 금 식자재마트에 방문해보는 것 외엔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 등을 순회하는 일은 하지 않고, 선착순에 밀려 포켓몬빵을 못 살 수도 있으며, 스티커를 확인한 뒤 빵은 꼭 다 먹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일주일 중 3일이 주는 희망과 그 희망이 100%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지가 자리 잡은 여섯 살 조카의 일상.


차근차근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가는 조카가 대견하다. 이 불확실성의 세계로 발돋움한 걸 기꺼이 환영하며. 


"다음에 시간 되면 포켓몬빵 오후 3시부터 줄 서볼게.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이모 복권도 같이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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