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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09. 2022

삶은 부레옥잠처럼

 어쩌면 보통날 5


책의 한 챕터를 한 호흡에 읽기가 꼭 미션 같다. 그만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여섯 페이지쯤 읽고 인스타그램 확인, 다섯 페이지쯤 읽고 유튜브 알림 확인, 다시 세 페이지쯤 읽고 트위터 새로고침을 한다. 책을 1시간쯤 읽으면 고작 스무 페이지 남짓쯤을 읽고 남은 분(分) 모두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트위터에 할애하는 듯하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엔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전시하고, '그런' 나의 모습에 반응하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책장을 덮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예전 같았음 반나절도 안 되어 완독 했을 책을 일주일 간 붙잡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책은 그렇게 천천히 보는데. 영상은 도리어 더 빨리 본다.


요즘 유튜브나 OTT 영상 재생 속도를 1.25배 혹은 1.5배 속으로 수정하는 일이 잦아졌다. 보통 속도로 보면 지루하고 때론 답답하기까지 해서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빨리 감기를 해 결론만 확인하는 일도 있다.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궤도에 오르고, 그에 점차 몰입하면서 함께 결론에 도달하는 지난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간편한가.


결론은 같다. 지구력의 부재, 집중력의 하락. 책을 조금 읽다 덮으며 흐름을 끊고, 영상을 빨리 감기 해 흐름을 생략한다. 삶은 간편해졌지만 삶에 과정이 사라졌다. 제 속도로 걸어가며 느껴야 하는 수많은 호흡과 용기, 슬픔이나 좌절, 환희 같은 단어들을 일상에서 잃어간다. 삶은 원래 지루하고 복잡한 것임을 자주 상기해야 하는 지점에 왔음을 불현듯 느낀다.


볼 게 없는데, 하면서도 SNS와 커뮤니티 훑기. 그 짧은 사이 연결되지 않음을 못 참는다. 잠깐 보지 않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까 봐,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까 봐, 시도 때도 없이 누르는 새로고침. 이게 더 사람을 더 분절시키는 길인지도 모르고. 옆에 있는 사람을 지우고 가상의 존재에게 더욱 의존해지는 일임을 모르고.


내게 덕후 유전자가 있음을 깨우친 첫 번째 대상은 H.O.T. 였지만 덕질이 무엇인지 강렬한 첫 경험을 남긴 대상은 god였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로, 공부를 하는 목적으로, 사랑을 주는 과몰입으로 그 시절 나를 온통 지배했던 대상. 멤버 다섯 모두가 참여하는 완전체로서의 콘서트가 4년 만에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3일간의 서울 공연을 모두 예매했다. 현재 진행형인 덕질의 방탄소년단 콘서트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간다면 현재 완료 시제 덕질의 god 콘서트엔 좋았던 시절로 회귀하는 발걸음으로 간다. 이유와 목적과 과몰입으로 살아가던, 마냥 좋을 미래만 상상하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 그때의 내가 현재로 소환되는 시간.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Yet to come>의 가사를 모두 외우지 못했다. 랩 가사는 대충 웅얼거리고 자신 있는 멜로디 라인만 목청껏 따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촛불 하나>의 가사를 완벽하게 외운다. 랩 가사를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부르고, 자동으로 두 팔 벌려 안무를 따라 한다. 열여섯이란 나이는, 그 나이의 처음은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이 무한한 생명력이 가끔은 소름 돋는다.


누가 그랬다. 듣는 재생목록이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이 나이 듦이라고. 나는 mp3를 여전히 가지고 다니며(이전에 쓴 핸드폰 공기계를 mp3처럼 쓴다) 스트리밍 대신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넣어 다니는 사람이고, 덕분에 최근 10년 간 재생목록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사람이니 언제부터 나이 들어 있었던 걸까.


다만 "요즘처럼 유튜브 있고, 인스타그램 있는 시대에 학교 다니지 않아 다행이야" 란 말 대신 지금과 같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여기까지 쓰고 찾아들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한참을 준비한 파리 여행 출국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가는 파리도 아닌데 버스 카드 종류를 검색하고,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방법 같은 것을 찾아보고 있다.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쓱쓱 잘 해내는 스스로를 알면서도 매 여행 출발 전, 매번 이렇게 준비한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지만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대안으로 만들어 놓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란 건 여행을 통해 알았다.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는 내 모습 하나를 발견하는 일, 즉 여행. 이번 파리에선 나의 어떤 모습을 건져올까.


부서가 달라 마주칠 일이  없는 후배가 점심을 같이 먹자는 연락을  왔다. 후배가 입사한  벌써 4 . 회사에 얼마 있지도 않은 여자 선배  하나가 난데, 나도   지. 이 후배와 둘이 밥을 먹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탄 후배에게  먹자는 말을 먼저 꺼내게  것에 대해 미안하다 말했다. 같은 부서 후배한테도  먹자는 말을   하는 선배라고, 네게만 특별히 마음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살짝 덧붙이며.


점심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두 잔씩 마셨다. 바 스툴에 나란히 앉아 회사와 업무에 대한 생각을 이리저리 나누다 갑자기 후배가 내게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일을 할 수 있냐 물었다. 본인이 보기에 내가 회사를 잘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고.


"부레옥잠 알죠? 부레옥잠처럼 다니면 돼요. 너무 뿌리내리지 말고 물결에 휩쓸리듯. 이리로 가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면 저리로 가고."


후배는 웃었고, 나는 초등학생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썼을 부레옥잠이란 단어가 아무 필터링 없이 툭 던져진 데에 스스로 의아함을 느끼다 이 무심한 적확함에 감탄했다. 맞다. 과몰입은 덕질할 때나 하는 것. 회사는 부레옥잠처럼 다니면 된다.


신형철 작가의 신작 <인생의 역사>는 앉은자리에서 절반을 곧바로 읽고, 이러다가 단번에 이 책을 다 읽어버릴까 봐 아까워 잠시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마저 절반을 읽었다. 그간 책에 집중력이 흐렸던 건 그 책들이 재미있지 않아서였던 걸까. 어쨌든 이번에도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음에도 고르고 골라 몇 문장만 따로 체크해두었다. 그중 끄덕거리며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문장.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잘 쓰는 사람의 글에는 사유가 있고, 그래서 여기에 쓴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게 하지만 그럼에도 쓴다.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없는, 생각하는 부레옥잠처럼 살아야지. 키보드를 누르고 싶은 대로 눌러 쓴 이 글처럼. 삶은 부레옥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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