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북유럽 07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 있다. 오늘만 남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이방인으로서 감각이 날 서 있을 때 발견하는 감정들이 있다. 내가 여행을 떠나와 매일 부지런히 쓰는 이유다. 쓰고 싶어지면 노트든 휴대폰 메모장이든 SNS를 열어 바로 적는다. 다음으로 미루면 절대 못 쓴다는 걸 알아서다. 시행착오로 깎아 만든 의식적인 습관. 지금 떠오른 단어나 문장은 지금만 가능한 반짝 타임 세일 같은 거라서 이 기회를 한 번 놓치면 결코 다시 생각해낼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어제의 나는 노트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휴대폰 메모장엔 의식의 흐름대로 끊어진 몇 개의 단어만 남겼을 뿐이다. 그나마 SNS에 몇 줄 겨우 썼다. 지금 쓰지 않으면 후회하는 사람은 결국 나다. 아침을 먹으러 온 조식당에 펜과 노트를 챙겨 왔다. 기어코 나는 여기서 한 페이지 이상을 채울 것이다.
스톡홀름 여행에서 호텔에 무료로 포함된 조식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첫째,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할 수 있고 둘째, 그 든든함을 흰쌀밥으로 채울 수 있고 셋째, 커피 한 잔에 거의 만 원에 육박하는 곳에서 여러 잔의 커피도 마셔둘 수 있고 넷째, 덕분에 점심을 가볍게 먹을 수 있다. 오늘은 다섯째 추가. 여행 노트를 쓸 수 있는 훌륭한 장소도 되어 준다. 오늘은 첫 접시부터 흰쌀밥에 반찬을 담아 왔다.
쾌청한 아침이지만 오후에 비가 예정된 날이다. 나갈 때 잊지 않고 우산을 챙겨야겠다. 한국은 현재 태풍 영향권이라고 한다. 한국 뉴스를 전혀 보지 않아 몰랐다가 안전 운전하라고 보내온 광고 메시지 때문에 알게 됐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멀어진 기분이다. 큼직한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해도 내 피부로 와닿지 않던 전파 속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조식 먹으며 여행기를 작성하는 여기가 내 세계이고 거기는 다른 이의 세계인 것처럼. 오늘 저녁은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할 예정이고 아침도 든든하게 먹는 중이니 점심은 카페에서 간단히 먹어야겠다 하며 오늘 일정을 체크했다. 하루가 식사를 기준으로 간단히 세 토막 났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러니까 시간 많고 체력 좋을 때 많이들 여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 많고 체력 좋지만 돈이 없던 그때엔 지금의 여행이 불가했을 것이다. 만 원이나 하는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기 위해 다른 소비를 반드시 포기해야만 했을 테니까. 시간도 많지 않고 체력도 별로지만 돈이 있는 지금의 나이에 와서 다행이다. 여행에 좋은 시기란 없다. 그저 그때 가능한 여행이 있을 뿐이다.
어제 9시에 잠이 들어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는데도 만족할 만큼 개운하지 않다. 평소와 달리 하루를 꼼꼼하게 쓴 피로가 쌓여가는 거겠지. 여행의 날짜가 흐르고 있다.
이곳에 꽤 오래 앉아 있었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겨 다시 아바 뮤지엄으로 가자. 예정된 시간에 관람이 불가했는데도 아무도 항의 않던 관용과 포용, 그 아바의 세상으로.
이거 데자뷔인가. 어제와 같은 시간에 같은 번호의 트램을 타고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바 뮤지엄에 도착하니 역시 어제와 비슷한 정도의 사람들이 뮤지엄 오픈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얼른 그들의 뒤에 섰다. 아, 데자뷔는 아니구나. 어제와 달리 10시가 되니 순차적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아바의 공연 영상이 반기는 전시실로 들어서자 아바가 활동하며 입었던 의상들, 전 세계에서 발매된 음반들, 받은 트로피들이 조명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간 아바의 활동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장소들도 있었다. 녹음실, 대기실, 의상실 등으로 꾸며진 공간엔 실제 아바가 쓴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원하는 아바의 음악을 청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원한다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출 수 있는 부스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졸업을 위해 부지런히 봉사 시간을 채우던 때.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어떤 -늘 그렇듯 이런 디테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전시회에서 하루 일을 할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근무 시간을 봉사 시간으로 인정해 주는 조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집에 응모해 참여자로 선발된 나는 전혀 모르는 타과생들과 섞여 각 전시실로 배정되었다. 눈치껏 핸드폰을 하거나 앉아 있거나 쉬는 것이 가능해 나는 아무도 없을 땐 MP3를 꺼내 노래를 들었다. 내부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구나 하며 지나가는데 갑자기 수군대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내가 돌아보자 전시실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몇몇이 아무렇지 않은 척 사라졌다. 이상한 기분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량을 줄였더니 "방금 쟤 춤췄다. 혼자 막 춤춰" 하며 키득이는 말소리가 들렸다. 전시실을 돌아다니다 나도 모르게 듣고 있던 음악에 어깨를 좀 들썩였나. 진짜 춤이라도 췄으면 말도 안 해. 아니, 춤을 진짜 췄다고 해도 그래. 그게 그렇다고 저렇게 웃을 만한 일인가?
물론 그때 유일했던 남학생 한 명이 꽤 훈훈한 얼굴을 했고 혼자 온 여학생은 나뿐이라 -나는 그때도 왜 또 혼자였는가- 어쩔 수 없이 둘이 같이 이동하고, 같이 설명을 듣고,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 탓에 본의 아니게 내 존재가 눈에 띄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나중에 하긴 했지만, 그것이 "쟤 춤춘다" 하던 말소리를 없앤 건 아니었다. 그들의 키득임은 이따금 선명히 되살아나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음악을 들을 때 스스로를 자주 경계하게 했다.
하지만 여기선 그래도 되었다. 아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전시실 내부를 돌아다니는 걸 도리어 권장했다. 직원들이 먼저 아바의 노래를 열창하면 관람객들이 화답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타인의 춤과 노래는 여기서 이타성 그 자체였다. “쟤 혼자 춤춰”라며 비웃는 사람이 없는 뮤지엄. 아바의 히트곡을 담은 오래된 청음 기계 앞에 서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Mamma Mia>를 선택했다. 발로 박자를 타며 고개를 끄떡이며 어깨를 마음껏 흔들었다. 흥이 나는 음악을 들을 때 몸이 움직여지고 마는 이 반응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되새기며.
버스나 트램을 타고 한참 걸리는 거리를 불과 반의 반도 안 되는 시간에 도착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면? 당연히 써 봐야 하지 않겠는가. 스톡홀름엔 그런 마법이 있다. 통근 페리다. 아바 뮤지엄이 있는 Allmänna gränd 선착장에서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이 있는 skeppsholmen선착장까지는 페리로 단 5분 걸리지 않았다. 풍경을 채 감상하기도 전이었다.
선착장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 작품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색을 지나치니 흘려 쓴 글씨로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이라 쓴 낮은 건물이 나타났다. 티켓을 구매해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은 잘 모르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기하학무늬로 반복되어 있는 회화나 땔감을 모아놓은 것 같은 설치 작품을 지났다. 전시실을 거닐며 묘하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무가 보이는 너른 창 위에 그보다 더 큰 페르낭 레제의 작품이 천장에 가깝게 걸려 있는 걸 보고 알았다. 여기는 작품 자체가 현대적으로 걸려있다고.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는 말이다. 작품의 크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불균형하거나 더블유 모양처럼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있거나 했다. 전시실 4면의 벽 모두 빈 공간 없이 작품들을 빽빽하게 채워 놓기도 했다. 그 가운덴 작품 하나가 벽 전체를 차지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피카소, 호안 미로, 장 뒤 뷔페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냥 지나쳤으면 사실 모를 뻔했다. 대체 이게 뭐야 싶어 전시실에 놓인 배치도를 보며 작가와 작품의 이름을 하나씩 대조해 보고서야 알았다. 이렇게 걸려 있으면 피카소도 호안 미로도 장 뒤 뷔페도 존재감이 하나도 없구나. 미술관이 한 작품에 얼마큼의 공간을 내어주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건 아닌지, "이게 피카소의 작품이에요"라고 미리 말하지 않으면 사실 우리는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건 아닌가 했다. 이미지를 한 번에 과하게 전달하면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현대미술관에선 마우리치오 카텔란 특별전도 함께 진행 중이었다. 운석에 깔린 교황, 전시실을 침투한 비둘기 , 천장을 향해 힘줄 돋게 뻗은 가운데 손가락, 지시하는 손가락 액자를 보며 꿇어앉은 작은 히틀러, 잠든 개와 노숙자 등. 미술관이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블랙 코미디 같은 작품들은 여전하다. 미술관을 논쟁적이고 열광적인 장소로 만드는 작가다운 아이러니.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의 이상한 배열도,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품도 같은 질문을 걸어오는 듯했다. 과연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미술을 잘 모른다. 그저 내 마음대로 느끼고 해석한 결괏값이 옳은지를 굳이 의심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미술관은 쾌적한 실내에서 눈이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몰라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미술관에서 내내 마음껏 오해했다.
기념품을 사러 뮤지엄 샵을 구경하다 현대 미술관 이름만 깔끔하게 쓰인 에코백을 발견했다. 색깔도 여러 가지였다. 부피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가격도 나쁘지 않고, 기념하기도 좋을 것 같아 하나를 골랐다. 그러다 선물용으로 몇 개 더 추가로 샀다. 분명 들어올 때와 같은 문으로 나왔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 보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일찍 문화 복지의 개념을 도입해 예술성이 뛰어난 조각상이나 조형물을 공공 시설로 설치했다는 스웨덴. 알렉산더 칼더와 니키 드 생팔을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고도 매일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여기 스톡홀름이다.
어제는 쇠데르말름의 서쪽을 구경했는데, 오늘은 쇠데르말름의 동쪽으로 왔다. 서쪽이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면 동쪽은 SPA브랜드를 비롯한 상점들이 좀 더 촘촘하게 자리한 활기찬 분위기였다. 세인트 폴 베이커리S:t Paul Bageri에서 라테와 크로와상을 시켜 사거리를 마주하는 바깥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작은 상점이라도 반드시 인도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짧은 이 계절을 최대한 만끽하려는 의지. 디자인 서적과 디자인 상품을 파는 서점들, LP가게와 빈티지 의류를 파는 가게,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들도 차례로 구경했다.
스웨덴은 국가가 주류 판매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알코올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수 3.5% 이상의 주류는 소매 체인인 systembolaget이나 일부 여행 소매점을 통해서만 판매한다고 한다. 실제로 마트에서도 술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식사를 하며 와인 한 잔 정도는 가볍게 마실 수 있어서 굳이 주류 판매점을 찾을 일은 없었는데, 호텔로 돌아가려는 이 타이밍에 systembolaget을 발견했다. 구경이라도 해야지 했지만 내가 구경만 할 리가 없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안다. 오늘은 스톡홀름에서의 마지막 밤이고, 하필 지금 주류 판매점을 만나버렸으면 기념 샴페인을 구입해야만 한다. 기본 사이즈로 구매하기엔 조금 부담이니 하프 보틀 볼랭저 한 병을 구입했다. 완벽한 동선이었다.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도시의 색깔이 또 달라졌다. 이걸 낭만으로 생각하는 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지 않는 사람 혹은 나 같은 여행객일 것이다. 여동생과 조카가 커플로 멜 수 있게 스웨덴 국민 가방인 칸켄백 쇼핑을 마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스톡홀름에 도착한 다음날 SNS 메시지를 받았다. 업무로 스톡홀름을 자주 방문하셨다며 괜찮다면 몇 곳을 추천하고 싶다며 전망대, 루프탑, 카페, 식당, 현지 시장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그중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고 알려주신 곳이 좋아 보여 오늘 저녁으로 예약을 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올 때마다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기꺼이 공유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본인이 아는 맛있는 곳, 가면 좋을 곳, 하면 좋을 것들의 리스트가 메시지로 쌓인다. 좋음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 저녁을 예약한 6시보다 조금 이르게 나왔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일부러 멀리 걸어 도착할 예정이었다.
저녁을 예약한 식당 크누트 바Knut bar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내부로 들어가 예약자 이름을 말했더니 예약 내역이 없단다. 예약 확정 메일을 보여주니 여기가 아닌 다른 지점으로 예약이 된 것이라고 했다. 분명 이 주소를 검색해 나온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했는데. 원하는 시간대를 체크할 때 가능한 곳으로 자동 배정이 된 걸까. 어쩐지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진행 같은 걸 하는 것 같더라니. 이런 외향적인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야 하나 당황했는데 이 전부가 하나의 단체 손님인 듯했다. 다른 지점의 주소를 확인해 준 직원이 그 지점에 연락을 해 조금 늦게 도착할 것이라고 전달해 주겠단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지점까지 도보로 17분이 걸린다고 나와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열심히 걸어 다른 지점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정확히 12분이 걸렸다. 내겐 가끔 걸을 때 작동되는 부스터가 있다.
뭔가 순록의 얼굴이 박제되어 있을 것만 같은 작고 어두운 내부는 북유럽의 겨울, 숲 속 오두막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를 띠었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니 기다리고 있었다며 인상 좋은 중년의 여성 점원이 테이블을 안내해 주었다.
메인 메뉴는 쉽게 골랐다. 식당 예약 전 메뉴를 미리 살피다 무스Moose란 단어를 봤기 때문이다. 살면서 언제 무스 고기를 먹어볼 수 있을까. 와인과 함께 메뉴를 얘기했더니 아주 좋은 선택이라며 인상 좋은 중년의 여성 점원이 윙크를 했다. 핑거 푸드에 와인을 마시고 있으니 곧 메뉴가 나왔다. 떡갈비처럼 저민 형태의 무스 스테이크. 부드럽게 부서지는 무스 고기는 씹을수록 진한 육즙이 느껴졌다. 이게 무스의 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고기 자체가 익숙하게 맛있었다. 원래 디저트를 잘 시켜 먹진 않는데 여기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절인 사과를 올린 디저트를 추가 주문했다. 이런 로컬 식당에서 스웨덴 음식으로 스톡홀름 마지막 식사를 마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곳을 알려주어 고맙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송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끝이 살짝 마른 우산을 노트에 닿지 않는 방향으로 가방에 넣었다. 정국의 <Standing next you>를 선곡해 틀었다. 볼랭저가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밤을 향해, 그럼 다시 걸어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스웨덴 국기를 좋아했다. 다른 나라 국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경쾌한 색을 지녀서였을까, 아니면 부루마블 속 콩코드 여객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톡홀름의 나라여서 였을까. 그러다 스웨덴 의회 앞 국기대에서 펄럭이는 스웨덴 국기를 보고 불현듯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지오디를 좋아해서 하늘색을 지닌 이 국기를 좋아했던 거구나' 하고. 그걸 갑자기 깨닫곤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기가 막힌 깨달음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고 걸으며 왕립 오페라에 다다를 즈음 얇은 기둥에 익숙한 이미지가 배너로 걸린 것이 보였다. 영화 <중경삼림>의 포스터였다.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왕조위의 집을 확인하려 무릎을 꿇은 왕페이의 옆모습. 이 시기에 스톡홀름에서 상영하는 <중경삼림>이라니.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턱 끝이 아릿하게 반응했다.
스웨덴 국기에 지오디를 연결시키고, 스톡홀름에서 <중경삼림> 포스터를 보고 반응하는 여행. 그러니까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여행이다. 내가 만들어온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는 여행. 당신은 나의 여행을 할 수 없다. 내가 영원히 당신의 여행을 할 수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