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핑계 : 완벽주의
나의 게으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아홉 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시절엔 근심이랄 게 하나도 없었다. 방학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당장 오늘 아침 학교에 가서 책상에 앉지 않아도 되고 내일까지 검사 맡아야 하는 숙제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고민 그딴 건 당연히 있을 리 없었다.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서 주말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며 히죽거리던 게 생생하다(일기장에서 발췌).
굳이 걱정이 있다면야 촘촘하게 짜둔 방학계획표나 방학숙제 정도가 있었겠지만, 계획표란 원래 ‘실행’ 보다는 예쁘게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었고 저학년 수준의 방학 숙제란 재미있는 놀이들이었다. 그렇게 아홉살 인생의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근심은 벌컥 하고 들어왔다.
문을 연 엄마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있었다. 무슨 구청인가 시청인가에서 주최하는 대회 안내문이었다. <독후감 100편 쓰기 대회>. 100편. 분명 초등학생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독후감 자그마치 ‘100’편이었다. 당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엽기’적인 대회였다. 아직 두자리 수도 안 된 나이의 초등학생에게 세 자리의 숫자는 가혹하다. 아니, 서른 한 살 짜리 나에게도 올 여름 내에 글 100편을 써내라고 하면 가혹하다. 애초에 책 100권 읽기도 어림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100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시절 나는 스스로 또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반 친구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가져왔고, 학교에서 무슨무슨 모범상 같은 걸 많이 타오기도 했다. 그런 우월감이 나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계속 우월하고 싶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엄마를 실망시키는 방법도 몰랐고. 그래서 나는 그 엽기적인 도전을 덥석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게 나의 짜릿한 여름방학을 전부 빼앗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책상에서 울고 있었다. 친구들이 시소에 앉아 있을 때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고 앉아 있을 때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내 방의 책상은 학교의 책상보다 더 끔찍했다. 45분마다 찾아오는 쉬는 시간 종소리도, 친구들도 없었다. 처음엔 책 읽는 것도 재미있었고 독후감을 정말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100편을 쓴다는 건 아주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어린애의 독해력과 집중력은 얼마 못 가 과부하가 걸렸고 무엇보다 자기통제력의 한계에 부딪쳤다. 이윽고 방학이 몇 손가락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되자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나는 방학 동안 이 막막해 빠진 원고지가 아니라 아구몬이나 실컷 보고 싶었다.
엄마가 이 도전을 통해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책 읽는 즐거움? 글 쓰기 능력? 아니면 포기하지 않는 끈기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치 암흑 진화한 ’스컬그레이몬‘처럼 전혀 다른 스킬을 습득하고 말았다. ‘요령 피우는 법’ 말이다.
독후감이 너무 지겨웠던 아홉 살이 선택한 방법은 책을 일일히 이해하고 작문하는 대신, 독후감의 패턴을 찾는 것이었다. 대충 책의 앞장과 마지막장을 읽고 줄거리를 몇 줄 쓴 다음, 마지막에 그저 교훈스러운 문장을 느낀점으로 덧붙여서 원고지 한 장을 채워낸다. 어차피 애들이 읽는 짤막한 책에 든 교훈이라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고, 곧이곧대로 책의 전체를 이해하지 않아도 그럴싸한 독후감이 되는 요령을 스스로 체득한 거다.
그리하여 ‘오늘은-’으로 시작해 ‘-느꼈다.’로 끝나는 일사불란한 100편의 독후감이 완성됐다. 한껏 뚱뚱해진 서류봉투에 풀칠을 해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원고를 마감했다. 뿌듯했던가? 후련했던가? 그 때의 기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내 방학은 허무하게 끝나 있었다. 개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며 그 여름의 사투가 차츰 잊혀져 갈 때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소포가 와있었다.
<참가상:가방>
대회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어린 내가 봐도 멋대가리 없는 청록색 가방이었다. 그 가방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요령을 피우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물론 내가 그 가방을 메는 일은 없었다.
그 후로도 내가 결심한 대단한 일들은 자주 멋대가리가 없어지곤 했다. 분명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댔는데 어째선지 자꾸만 배신감이 치미는 순간들이었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했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괜히 도전하는 바람에, 알고 보니 밑천 드러난 자신과 맞닥뜨린 것 같아서.
아아, 나는 정말이지 시시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시시한지 대단한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는 편이 나았다. 평소에는 요령이나 피우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뭔가를 보여주는 힘숨캐(힘을 숨긴 캐릭터)처럼 말이다. 만화에서도 보면 ‘게으른 천재’ 캐릭터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또 이렇게 놓고 보니 타이틀이 꽤 근사한 것도 같았다.
핑계가 너무 구차했나.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많은 도전들을 회피하거나 중도포기 하는 어른이 됐다. 매번 아홉 살의 이야기를 꺼내 올 순 없으니 ‘허접하게 할 바에야 안 합니다~’ 하고 나의 품위를 지켜낸다. 사실 그 동기는 장인정신 보다는 뒷걸음질 쪽에 가까웠지만. ‘의미 없는 도전은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가방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은 진짜 맛대가리 없는 신 포도를 안 먹어본 여우들이나 하는 말이라면서.
그래, 분명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는 뭔가 사소한 변화라도 있었겠지. 어쩌면 그 때 100편을 썼던 요령이 필력의 밑거름이 되어서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지 않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 말이 여름방학을 다 잃은 아홉 살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