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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 Sep 23. 2024

몰아서 해야 능률이 오릅니다만?

세번째 핑계 : 벼락치기




벼락치기는 그 이름 만큼이나 짜릿한 맛이다.

얼마나 짜릿하냐면, 무려 ‘더 이상 미루면 죽을 것 같을 때’ 사용할 수 있다. 영어로도 ‘데드라인(deadline)’이라 한다. 기한이 많이 남았을 때는 절대 발동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기본 조건이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만큼 마감 게이지가 차면 벼락을 쾅 내리칠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이 모인다.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 같은 일도 나는 이런 식으로 움직여왔다. 가령 이 원고도 사흘을 미룬 후 ‘이러다 굶어 죽겠는데?’ 싶은 마음이 들고서야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써진 것이니까.


스스로 위기 상황인 척 하면 시간이 넉넉한 때에도 그 힘을 좀 더 안정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한 시간 뒤를 마감시간이라고 가정해두고 알람을 맞춰봤다. 그러나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를 따라갈 수 없더라.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에 의욕만 떨어지고 만다. 결국 그대로 더 게으르게 퍼져있다가 다시 어떻게든 데드라인 코앞까지 오고야 말았다. 흠… 아무래도 나는 벼락치기에 중독된 것 같다. 재밌는 모양이다. 한껏 높아진 난이도와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내 잠재 역량. ‘이게 되네?’ 벼락치기는 테트리스에 네 칸짜리 세로 획 블럭 같은 거다. 네 줄이 한 방에 깨지는 고득점 쾌감. 캬.




인생을 그렇게 매사 장난으로 사느냐고? 아니다. 조금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 벼락치기의 원리는 ‘몰입’과 비슷하다. 심리학에서 ‘몰입’은 자의식이 사라질 만큼 어느 것에 심취한 상태를 뜻한단다. 그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지듯이 말이다.

영화 <소울>에는 거리에서 광고판을 돌리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주인공들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면 판을 돌리는데 몰입한 동안 그의 영혼은 저세상에 가 있기 때문이다. 몰입이나 벼락치기나 ‘죽음’과 ‘재미’ 이 두가지가 최대 능력치를 발휘하게 만드는 전제조건이다. 나는 몰입 상태에 빠지기 위해 일부러 미루고 미뤄서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거다. 그러고는 벼락을 집어든 제우스처럼 외친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아, 이건 좀 오바였나.




나도 솔직히 ‘미리미리’가 부럽다. 그러니까 자기통제력이 뛰어난 사람 말이다. 자신이 정한 목표에 맞게 미리 계산해서 소분해둔 하루 치 진도를 매일매일 수행하는 사람. 거기에 계산을 좀 더 더한다면 예습이나 복기 같은 것까지 시간 안에 포함해서 일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도 있겠다. 계획력과 실행력이 서로 협조가 잘 되는 사람은 아주 안정적인 수행능력을 가진다. 일을 실패하는 법이 없고 믿음직스럽다. 어른스럽게 하루하루를 통제하는 그들을 보며 질투를 한다. 와, 저 사람들은 밤에 잠들기 전에 얼마나 뿌듯할까, 아마 그 다음 날도 빨리 일어나고 싶겠지? 대부분 하루종일 시간에 끌려다니다 새벽쯤에 모두 내일로 미루는 것으로 하루가 끝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과다.


그럴 땐 괜히 심술이 나서 한번 대결을 벌이고 싶어진다. 아주 촉박한 제한시간을 두고 누가 더 높은 퍼포먼스를 내는지 겨뤄보자고. 벼락치기에 단련된 나는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알고 있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라는 사실을.




사실 몰입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은 크기보다 빈도 쪽이다.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서도 순간적인 상태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 상태를 유지할수 있어야 몰입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점이 벼락치기와 가장 큰 차이점이겠다. 벼락치기는 극단적인 순간에 한정해서 반자동으로 발휘되는 능력이니까.

언제까지고 데드라인을 이용할 순 없다. 일을 할 때마다 죽을 것처럼 힘들고, 이러다간 모르긴 몰라도 제 명에는 못 살 거 같다. 최대 능률을 더 자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속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몰아서 해야 능률이 생기는 유형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당연하다는 듯 항상 데드라인까지 나를 몰았다. 이제 다른 걸 몰아보기로 한다. 좋은 레퍼런스, 글감, 잘 쓴 글들에 대한 질투, 칭찬 댓글… 그런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몰아져 있는 상태를 만들어본다. 글을 안 쓰고는 못 배기게 말이다. ‘죽을 만큼 재밌는 상태’는 ‘죽을 것 같은 상태’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자주 최상의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오래 오래 유능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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