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압수

자정에서 다섯시 반 그 사이

by 김보


새벽.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자정을 넘기고부터는 일 분 씩 또각또각 멀어질 때마다 점점 차분한 곳으로 간다. 시계소리 외엔 나를 방해하는 소음도 카톡도 없고, 바람 냄새부터 다르다. 마음이 고요해져서 뭐든지 집중이 잘 되는 기분. 옛 기억들이 난데 없이 스며들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새벽 한 신가 두 신가, 사람이 가장 센치해지는 시간이 있단다. 그걸 저격하듯 ‘새벽에 듣기 좋은 노래 플레이리스트’가 유튜브에 많다. 이 노래들은 드럼도 없고 고음도 없고 잔잔히 흐른다. 센치한 가사들도 꼭 새벽을 닮았다. 하루를 위로 받는 시간, 이게 힐링이 아니면 뭘까? 역시 메인 디쉬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라 하루 마지막에 새벽이 있나보다. 하루종일 피곤에 찌들었다가도 자정만 넘기면, 이건 못 참지 하며 말똥말똥해진다.


새벽을 좋아하게 된 것은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자야지, 출근하잖아” 내일을 걱정해줄 부모님도, “불 꺼, 나 자야돼”, 매너를 당부할 룸메도 아무도 없으니. 매일 몇 시간이고 황홀한 새벽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새벽과 가까워진 만큼 아침과 멀어져 갔다. 자율출퇴근제를 빌미로 아침 시간을 잠 자는데 할애했고, 그러다 보면 한 줄 씩 밀려쓴 오엠알처럼 오전 업무가 오후로, 퇴근이 야근으로, 저녁식사가 심야로 미뤄지는 것이다. 통제 없이 끌려다니는 일상에서는 루틴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시간을 억지로 유동적으로 조정할 때마다 합리화들이 하루 끝에 가 쌓였고, 자정이 오면 그것들이 전부 아쉬움으로 변하고 만다.


한 시 두 시, 매일 새벽이 아쉽다. 오늘 아직 충분히 근사하지 않았는데 벌써 내일로 넘어가는 것이 속상해서.

두 시 세 시, 그렇게 유튜브나 게임이나 더 근사하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놀다가 결국 시시한 하루를 다 완성하고서, 내일 걱정이나 하며 늦은 잠에 든다.

새벽을 좋아한 대가가 이 후회의 쳇바퀴라면 이제 그만 새벽을 반납해야만 한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뜻풀이가 ‘주체적인 삶’이라면. 하루종일 끌려다니고 미루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아침을 맞을 연습이 필요하다. 아침 식사, 아침 운동, 출근 시간, 루틴 첫 줄부터 제대로 맞춰야, 자정의 시간도 온전히 내가 만드는 내 것일테니. 나는 여전히 새벽을 정말 좋아하지만, 근사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한동안은 아침과 더 가깝게 지내야 하겠다.


내일 아침에는 한남대교 위에서 동이 트는 걸 봐야지. 건강한 아침도 먹을 거다. 그렇게 근사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나 아무리 꼭 눈을 감아도, 아무래도 새벽에 정이 너무 들어서, 아쉬워서 좀처럼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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