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열심히 하지 않은 죄

by 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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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의 토끼, <소가 된 게으름뱅이>의 게으름뱅이,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

오늘도 수많은 아이들의 반면교사로 교편을 잡은 우리의 빌런들. 이들의 죄목은 무시무시한 나쁜 짓은 아니고(굳이 찾자면 말을 못되게 한다는 점…?) 그저 방심하거나 게을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결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기에 충분하다. 우리 나라에는 유난히 게으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동화가 많다. 예로부터 ‘근면’이 최고 미덕이었던 아침의 나라 조선. 이 땅에서 게으름은 명백한 큰 죄다.


반면에, 같은 맥락으로 '최선'은 항상 훌륭한 선악의 잣대가 된다. ‘열심히 말고 잘 해야지’ 최선은 성과의 잣대로서는 현대 사회에서 그 기능을 잃었기에, 잘잘못의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비난에서 어느 정도 감면 받을 수 있다.(덤으로 동정까지도) 앞선 빌런들처럼 공개처형 당하진 않는다. ‘노력이 가상하다’ 하지 않는가. ‘가상하다’는 착하고 기특하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 최선에 대해서 최소한 ‘착함’은 인정 받을 수 있다.


어느 때에는 이 잣대를 영리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진짜 게을렀던 게 아니라, 어디 쯤인가 한계로부터 의욕을 상실 당하고 넘어진 때에. 넘어진 아픔보단 창피함이 더 날 아프게 하는 경우들. 그런 때엔 형편 없는 나를 감추기 위해 ‘최선’을 역이용한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거다' 말한다. <드래곤볼>의 빌런 프리저처럼 '이건 내 힘의 50%일 뿐이다'라 한다. 그 편이 덜 아프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나는 게으른거다. 최선이 부족한거다.


그러니까 반면교사직은 거부하겠다. 내가 누군가의 교사라니, 아무래도 남 가르치는 건 체질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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