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가

권태

by 김보


지금 우리 그거다. 권태기. 글쓰기와 나는 권태에 빠졌다. 얼마 전부터 서서히 언짢더니 이젠 마음에 안 드는 점들만 보인다. 서로의 문제를 잘 안다. 나는 게으르고, 글은 형편없다. 고민에 빠졌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엔 우리도 활활 불타오르는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음 날 글을 생각했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좋은 책들을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이 열정도 영원할 줄 알았다.


한 마디도 먼저 떼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가 지는 것 같아서. 그냥 흰 여백을 노려본다. 좋은 글이 마음이 풀어져서 술술 나왔으면. 내가 잘못이 아니었으면. 그러나 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게으른 사람 손 끝에선 조금도 나올 마음이 없다 한다. 우리는 똑딱똑딱 흐르는 초침의 박자에 맞춰 점멸하는 커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시간 째 서로를 노려보는 중이다. 아메리카노는 벌써 얼음까지 다 씹어 먹었는데.


권태기에 빠진 이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더 이상 용건이 없다. 쓸 이야기가 다 닳고 바랬다. 이 표현은 그제 썼고, 이 내용도 몇 번 째 같은 방식이다. 남들처럼 뻔해지는 게 싫어서, 특별하고 싶어서 시도했던 노력들이 결국은 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겁이 됐다. 이러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패턴으로 시간 맞춰 대충 마무리 하고 불쾌한 마음으로 잠에 들까봐 겁이 난다. 매일 봐서 그런가. 이럴 거면 매일 쓰기가 아니라 일주일에 두 세 번 쓰기로 할 걸 그랬다. 잘 알다시피 의미 없는 후회다.


시간이 없다. 가장 큰 걱정은 우리의 끝이 새드엔딩일까봐. 백 일 간 글쓰기 도전이 끝나는 그 날, 다시는 보지 말자며 이별이 될까봐 그게 가장 겁이 난다. 언제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미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누구는 사랑에 백 일이 기본이라는데, 나는 백 일 채우는 것도 참 고단해서 내내 갈등하고 대치하고 한다. 참다 못한 글 쪽에서 불쑥 먼저 묻는다. 뻔한 드라마 대사처럼, ‘나 사랑하기는 해?’ 글쎄,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가. 백 일도 못 채워 매일 숙제처럼 저 하루 끝 미뤄두고서, 남들 글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져서, 이젠 빈 여백 커서 눈치만 깜빡깜빡 보는 이것도 사랑일까. 분명한 것은 늘 그렇듯 후일에 ‘조금만 더 잘할 걸’ 하는 쪽은 내 쪽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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