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해

이불 안은 더 위험해

by 김보


주말 아침, 아니 점심 쯤 눈을 뜬다. 합법적으로 아무 시간대에나 눈을 떠도 되는 요일이다. 침대 매트리스가 몸을 딱 맞게 받치고, 이불이 몸에 딱 맞게 덮혔다. 이런 완벽한 조합은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상 시간을 딱 10분만 미룬다. 손을 뻗어 폰에서 충전기를 떼어내 이불 안으로 가져온다. 유튜브를 몇 개 보다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정신을 차려보면 어디 무슨 베어그릴스의 애벌레 먹방을 쳐다보고 있다. 이미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있다. 지난 김에 한 시간 맞추자며 또 인저리 타임을 추가한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보면 내 가장 아끼던 시간을 쓸모 없는 곳에 다 떨구고서 또 시간에 쫓기고 있다.


샤워를 하며 지나간 다짐들을 생각한다. 뜨거운 물방울과 함께 자책감들이 세차게 몸을 때린다. 마른 사람 프로젝트, 똑바로 살기 프로젝트, 괜찮은 서른 되기 프로젝트... 결심을 굳히고자 별난 프로젝트명까지 붙여가며 만들어낸 다짐들. 웬만한 건 진작 다 실패했다. 내 많은 계획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잘 될 이유들로 호기롭게 시작하나 내내 안되는 이유들만 모으다 끝난다. 문제를 추적하다 보면 어김없이 내 게으름과 마주한다. 그 곳에는 내가 허용해버린 수많은 합리화들이 있다.


애벌레 먹방만 보고 일어나는 건 괜찮다는 합리화,

미루는 것이 아니라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며 밀어둔 일 한 더미에 대한 합리화,

이건 공백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합리화.

내가 합리화에 너그럽게 굴던 동안 그 미뤄둔 것들은 다 나의 단단한 게으름이 되었다. 벼락치기의 달인이라며 임기응변을 단련한다지만, 그런 것들은 알다시피 깊이감이 없다. 무엇보다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를 동반한다. 뼈 아프다. 나태는 일곱가지 대죄 중 한 가지가 명백하다.


확실한 것은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 게으른 사람은 없었다. 끊임 없이 뭔가를 하던 그들은 어쨌든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난 애초에 토끼도 아니었지만, 나무 밑에서 10분, 20분 출발할 시간을 미루며 낮잠을 자다가, 늦은 오후 결승선의 거북이들만 쳐다보며 속 타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그건 의지가 좋은 특별한 거북이들만 가질 수 있는 거라며 합리화 하는 내가 애벌레 먹방만큼이나 하찮다. 대체 나는 왜 이리 게으른 것이냐. 전력질주로 치고 달리는 꽉 찬 레이스를 나도 정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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