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달리기 작심 삼일 차, 악명만큼이나 오늘 아침은 정말 발이 안 떨어졌다. ‘오늘은 쉴까?’ 마침 하반신에 얻어맞은듯 구석구석 알이 배겼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무릎보호대가 와있다. 어제 배송 시켰는데 부지런하네... 쿠팡맨의 도움으로 주섬주섬 보호대를 차고 겨우 발을 떼었다. 박하맛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찌저찌 달리기를 시작했으나 채 5분을 못 가 걷기로 전환한다. 오늘 왜 이렇게 뛰기 싫은고 했더니, 한참을 걸어 한남대교에 다다라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언 한강이구나. 매번 뉴스에서만 보던 특급 한파의 기준. 한강이 어는 영하 13도, 한파 특보였다. 몸이 얼어서 뛰지도 못하고 한남대교 위에서 덜덜 떨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거면 왜 나왔지’, 내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요즘 비슷한 생각이 든다. 한 달 넘게 매일 글을 쓰다보니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기는 바람에 몇 줄 읽으면 글 말미가 예상이 되는 뻔한 글이 되기 일쑤고, 표현들도 죄 진부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엔 애정 가는 몇 줄을 떼다가 자주 꺼내도 보고 SNS에 공유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글 발행을 하고 나면 창피해서 다시 들어가기가 겁난다. 빈 화면 켜놓고 쉽게 문장을 못 시작하고 딴짓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미술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이게 뭔지 잘 알고 있다. ‘슬럼프’. 연습 효과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저조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림쟁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인데, 이게 아주 고약하다. 언제 어떻게 온단 예고도 없이 불쑥 닥쳐서 ‘그것도 그림이냐’ 왁하고 의욕을 다 꺾어버리는 것이다. 이 때에는 주변의 작은 성공에도 쉽게 질투가 나며, 누군가 독려나 칭찬을 해주면 외려 더 작아져버리는 아주 꼬여버리는 상황이 된다. 슬럼프에 크게 빠지는 때에는 정말 위험하다. 얼마 있다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영영 그 손을 놓아버리게 되니까. 그렇게 미술에서 손을 떼고 떠난 동료들을 여럿 봐왔다. 사실은, 바로 내가 그랬다. 어느 날 슬럼프에 크게 치이고서 10년 넘게 전공해온 미술에게 포기를 선언했다. 그림 더는 그리고 싶지 않다고, 이만큼 밖에 못 그리는 내가 미웠고, 나보다 잘 그리는 남이 미웠다. 그 때는 세상이 다 미웠다.
슬럼프에서 미운 까닭은, 나 자신에게 섭섭한 마음일거다. 왜 성실하게 노력했는데 늘지 못하냐고, 순수하게 성장을 원했을 뿐인데 왜 벌이 주어지냐고, 어디가 잘못된 건지도 알려주지 않는 그 정체가 속상한거다. 웬만한 것들은 노력에 비례해 성장하지 않으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알이 배길 때, 마음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 상황이 미워지기만 한다. 그러나 배긴 알은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 우리의 신체가 그렇듯 참고 움직임을 이어나가야만 그 자리에 자랑스런 근육이 붙는다. 그림이 더 이상 진로는 아니더라도 나의 평생의 특기가 된 것처럼, 유의미한 것들은 지체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섭섭함을 미워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참고 이어나가면, 내일은 더 잘 뛸 거고 모레는 더 잘 쓸 거다. 다음주 쯤엔 꽤 건강해질거고, 그러면 한 달 뒤에는 내 인생도 어딘가 더 나아질 거다. 어찌 되었든 벌 보단 응원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게 할 테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근육이 붙을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실어주는 수 밖에는 없다. 잘 뛰지 못한 오늘에 벌 보다는, 한파 특보에도 나간 의지에 응원을. 애썼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