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입니다
‘요즘 진짜 무기력하다’
불알친구 D는 회사 지침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간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 요즘 그는 내가 봐온 12년 중 가장 게으르다. 아침 아홉시 부시시한 몰골로 출근 인증을 하고서 다시 취침, 그의 제대로 된 일과는 점심을 건너뛰고 오후 두 세시부터 시작된다. 바깥에 나가기 귀찮으니 집에 쌓아둔 컵밥으로 한 끼를 때운단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니 살도 눈에 띄게 빠졌다. 어차피 바깥에 가게들도 9시면 닫겠다, 카페 갈 일도 없고 술 약속도 못 잡는 그는 열 평 남짓 되는 자취방이 월화수목금 운동 에너지의 전부다. 심심해진 시간 만큼 카톡을 부쩍 자주 했다. 처음엔 ‘재택 개꿀 부럽지’ 조롱이었으나, 점차 ‘회사 요즘 어떠냐’ 바깥 이야기를 묻더니, 반 년이 된 요즘에는 카톡에서 우울함이 뚝뚝 묻어난다. ‘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이 멈춘 것 같어’.
취미라도 가져보라고 권유해봐도 소용없다. 반년 간 재택에 길들여진 몸은 이부자리를 물리칠 힘을 잃었고, 이제는 힘보다는 의욕을 잃은 것이 더 큰 문제인 듯 보였다. 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 뜻이었구나. 회사에 가서 사람도 만나고 업무 압박도 받고 싶다는 그의 말에, 회사를 그렇게 싫어하는 나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D가 무기력해진 것이 꼭 그가 게으른 탓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자기 계획 세우길 좋아하는 ‘찐J(MBTI 유형 중 계획형)'였고,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서 하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낯설어진 D의 현재 모습은, 재택이라는 그의 자리와 멈춘 세상이 만든 부작용 같은 거였다.
상호작용이 없을 때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창작의 고통이 그렇듯 혼자서 무언갈 만들어내는건 불완전한 인간에게 너무나 큰 막막함이다. '서포트, 피드백, 파이팅', 꼭 의지할 만한 대상이 아니더라도, '푸시, 컴플레인, 데드라인',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어야 바퀴가 굴러간다. 수동적인 핑계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당장 이 브런치만 해도 그렇다. 공감과 댓글로 의지를 얻고, 잘 쓴 글들에 대한 질투와 피드백에 대한 오기로 동기를 얻는다.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산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잊혀진다, 결국 이거 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반증들이다. 밀려드는 고독을 혼자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나. 우물우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니 그냥 씹을 수 밖에.
그는 오늘 고독을 씹으며 재택으로 야근을 한다. 무기력증으로 미루고 미루다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몰아서 일을 시작한 탓이다. 같은 야근이라도, 사무실이었다면 함께하는 동료들로 그 야경만은 화려했을테지만, 그의 야경은 초라하다. 재택근무가 마냥 좋은건 아닌가보다 그치? 속 없는 느긋한 질문에 마음 급한 그는 쌍욕을 박고선 세차게 전화를 끊는다. 오늘만은 그의 고독한 카톡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조그마한 304호가 밤 늦게 홀로 밝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