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뒤에도 이불킥 예약이요
“이십대도 수고 많았다, 짠!”
1월 1일, 서른을 시작해낸 친구들이 수고를 다 마치고 옆에 널부러져 잔다. 오래 전부터 굳게 약속해온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서른맞이 여행. 어리숙하던 십대로 만나 화려했던 이십대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하나도 안 변했으나 모든게 다 변했다. 여전히 머릿속 학창시절 에피소드의 그 주인공들 모습과 똑같지만, 이제는 놀랄만큼 각자 색깔이 짙어지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변치 않는 모습으로 모든 게 다 변하는 이 긴 시간동안, 함께 그 기억을 공유하는 이가 있다는 것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서른의 의미보다는, 삼십대를 또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이 컸다. 마흔에도 이렇게 같이 보내면 좋겠다, 내일 눈 뜨면 서른인 게 실감이 안 난다는 잠꼬대 섞인 말들을 마지막으로 하나 둘 잠에 들었다. 기분 탓인가, 어딘가 좀 더 아저씨스러워진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나는 이제 내 서른의 시작을 살펴본다.
내 지난 해는 고백하건대, 유난히 유난을 떨었던 한 해였다. 코로나 핑계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아홉수라며 한껏 엄살을 떨었고, 애정 어린 이십대를 떠나보낸다며 마음껏 센치했다. 특별함을 핑계 삼아 올 해까지만 봐주는 셈 쳤던 일들이 참 많았다. 이 시간 아프게 떠오르는 후회의 장면들은 그 미룬 것들의 회초리겠지. 몇 대 얻어맞다보니, 친구들에게는 토닥 토닥, 그렇게 마땅히 터져나오던 수고했다는 말이, 나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좀 더 최선을 다하지, 이건 이십대에 마무리 해놓지 그랬어. 왜 이리 준비도 없이 허접한 서른이 되어버렸냐며, 서른의 시작에 드는 나의 가장 큰 감정은 부끄럼이다. 내 서른은 이다지도 막막한거냐며 누구 탓도 못하고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문득 중학교 입학하던 첫 날 기억이 난다. 덩치가 선생님 만큼이나 크던 형들, 완전히 새로운 교과서. 그렇게 어렵게 한 학년 한 학년 쌓아와서 이제 제일 높은 6학년이 되었는데, 다시 1학년부터 시작이라니, 다시 맨 아래라니. 묘한 좌절감 같은게 느껴졌던 기억. 새로운 세상에 나간다는 건 그렇게 항상 막막한 법이었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갓 입대했을 때에도. 쌓아온 것들은 쓸모 없게 느껴지고, 내가 잘 대비했어야 했다며 자책하게 된다. 20대 후반을 지내오는 내내 우월감으로 ‘내 말 잘 들어라’ 후배들에게 잘도 조언해온 것들이 이제 30대 중 가장 어린 서른 살이 되어 부끄러움으로 돌아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십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 ‘서른이 되기 전에 준비할 것들’ 같은 책들을 좀 읽을 걸. 끝자리 0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면서 또 한껏 막막하다.
아까 찍어둔 ‘마흔에 다시 볼 인터뷰’를 돌려본다. ‘서른 되는 기분이 어떠세요?’, 친구 W가 말한다. ‘별 거 없죠. 나이 먹는다고 뭐 변합니까’ 이것은 이 비디오에서 마흔에 봐도 창피하지 않을 유일한 대목일 것이다. 늘 툭 던지는 말로 허를 찌르는 W였다. 맞다. 어제에서 고작 하루 지나고, 고작 한 살을 더 먹은 거다. 서른다운 게 어디 있고, 넘지 못할 막막함이 또 어디 있겠나. 다만 이 시간처럼, 엎드려 후회하지 않도록, 올해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바짝 힘내서 수고할 일이다. 별 거 없다. 1학년, 2학년 차곡차곡 쌓아야지. 결국엔 이 글도 마흔에 다시 보면 또 한없이 부끄러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