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지내는 게 자랑입니다

네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by 김보


장기하를 처음 알게 된 건 12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웃긴대학이라는 유머 사이트에서였다. ‘달이 차오른다~’ 타령에 가까운 창법에, 양 팔을 넓게 벌린 채 휘적휘적 하는 춤을 추는 모습이 그 당시 센세이션이었다. 처음엔 마냥 웃겼는데 그 말하듯 중얼거리는 멜로디에 무엇보다 깊이감이 남다른 가사에 중독이 됐다. 고2 여름엔 앞면에 장기하 얼굴이 크게 박힌 티셔츠를 내내 입고 학교를 갔을 정도였다. 그 노래들 중에도 특히 좋아하던 ‘별 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가 있다. 랩도 아니고 낭송도 아닌 처음 보는 창법에, 주변에 아무리 추천을 해도 다들 이게 노래냐면서 질색했지만, 그 가사가 깊숙히 박혀서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따금씩 그 가사를 흥얼대곤 한다.


네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뭐 별 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 티, 2009년


별 일 없는 게 뭐 자랑이라고,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내 저렇게 기대를 시켜놓은 다음 ‘나는 별 일 없이 산다’며 여러 차례 자랑하는 것이 곡 전개의 전부다. 장기하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 죄 ‘죽지 못해 산다’, ‘힘들다’, ‘어떤 게 고민이다’ 이렇게 안 좋다고 말을 하고, 그러면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아니구나’하며 겨우 동질의 위안을 얻는단다. 그걸 꼬아보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안부를 물을 때 별 일 없이 산다는 건 자랑이지 않겠냐는 거다. 수긍이 되었다. 하기사 지난 일 년을 톺아보면 늘상 연말에 하는 말처럼 구석구석 다사다난한 일들 투성이었고, 내내 안정을 그리워해왔다. 별 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가 3분 32초 내내 얄밉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사실 우리는 다사다난 속에서 늘 별 일 없는 삶을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별 일 없는 때에는 감사한 줄 모를 때가 많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상태를 점검해보자. 우선 혀로 입 안을 훑어본다. 시린 치아나 구내염이 없다. 신체를 움직여 본다. 걱정 될 만큼 아픈 곳은 없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내일 먹을 것들이 제법 차있고, 방 온도도 떨지 않을 만큼 따듯하게 불이 잘 들어오고 있다. 내일 꼭 완료해야만 하는 큰 과제도 없다. 일단 내일 일할 직장이 있다는 것부터가 감사할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누군가 요즘 어때? 라고 물었던 그 때가, 내 불평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 대신에, 감사하게 별 일 없다고 말해야할 타이밍이었다. 장기하 본인도 정작 ‘별 일 없이 산다’ 노래를 낼 당시 사실은 골방에서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많은 걱정과 문제들과 싸우고 있었을 테다.


그러니 별 일 없이 사는 방법은 오로지 감사와 연결될 문제다.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별 일이라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별 일로 돌아선다. 별 일 없는 일상에 감사할 때 의미가 붙는다. 그렇게 의미가 붙은 일상들이 모여 행복이 되고 자랑이 될테니, 결국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건 별 일 없는 일상들 만큼이나 별 게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진짜 그렇다. 요즘 같은 험한 시국에는 더욱. 나는 감사하게도 제법 별 일 없이 지내고 있고, 별 일 없다 말하는 당신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으려 한다. 다시 한 번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멀리 지난 다음 희극으로 보여질테니. 우리 모두 무사히 별 일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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