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에 에비앙을 주듯

떠나간 것에 대하여

by 김보


입술이 유난히 바삭거려 생수를 한 모금 입에 댔다. 히터가 좀 센가, 사무실이 오늘따라 건조하네. 그러다 헉, 입으로 소리가 터져나왔다.

'해바라기 물 주는 거 깜빡했다!'

재택근무로 사무실에 없던 단 사흘 만에 해바라기는 이미 바싹 시들어있었다. 드라이플라워인 줄 알았다. 날개처럼 촥 돋히고 있던 잎들은 쉰 김치처럼 쳐졌고, 봉오리도 미라처럼 생기가 없었다. 삐- 바이탈 사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난 여름, 인사팀에서 인당 하나씩 해바라기 씨앗과 화분을 급했다. 꽃이 핀 순서대로 5등까지 한우를 증정하는 격려 차원의 이벤트였다. 해가 잘 안드는 내 자리에서 자란 해바라기는 순위권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각날 때마다 물을 한 번씩 부어주면 다음 번엔 이만큼, 또 이만큼씩 자라있는 게 신기했다. 야 이게 사네, 이러다 꽃도 보겠어. 물 주는 걸 깜빡하느라 선인장도 죽여본 식물킬러인 나로서는 이 꿋꿋하게 올라오는 해바라기에게 무던한 애정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을 함께 왔다.


갑자기 미라가 된 놈을 보고, 슬프다는 감정보단 아쉬움이 컸다. 큰 관심 없어도 가끔 물만 줘도 생기 있던 놈이었는데, 며칠만에 이런 모습도 되는구나...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봉오리가 곧 터지기 직전이어서 더 충격이었다. 항상 꿋꿋히 있을 줄 알았는데. 며칠만 물을 더 줬어도 꽃을 봤을텐데. 시들었다 말하기도 민망한 뼈만 앙상한 해바라기에 탈탈탈 생수를 고 한참 봉오리를 쳐다봤다.


문득 수원 살 적 집 가는 길 육교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떠올랐다. 어느 장맛날, 벼락을 맞고 난데 없이 동강 나버린 느티나무. 500년 간 그 자리를 지켜, 이 동네 이름도 느티나무골이라는 걸 쓰러진 후에야 알았다. 떠나간 것은 항상 후회를 동반한다. 그저 매일 지나가는 그 곳에 있던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번 쯤은 가만히 들여다라도 볼 걸. 말라버린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 번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내 얼마나 컸나 슥 체크만 했었지. 히 아쉬워 흥건해질 때까지 물이나 한 번 더 준다. 시든 꽃에는 물 아니라 에비앙을 준다해도 소용 없는 법이다. 장 좋은 것도 있을 때 건네야 의미 있다는 걸 늘 그 후에 안다. 그래서 '후(後)회'인가 보다.


강남역 신분당선 역사 안 늘 지나가던 그 자리에 항상 껌 파는 할머니가 한 분 앉아있었다. 며칠 뜸하시더니 오늘은 그 자리에 할머니 대신 꽃들이 잔뜩 있다. , 돌아가셨구나... 나도 오며가며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던 터라 저절로 우뚝 발이 멈췄다. 잠깐 기도를 하고선,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의 편지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그들은 앉아서 말 벗도 하고, 껌도 사고 애정을 건넸기에 그 자리에 못다한 말들이 빼곡하겠지만, 나는 물도 한 번 부어주지 않았으므로 그런 감정들조차 느낄 수 없다. 이제 그 할머니가 늘 있던 풍경을 볼 수 없구나 하는 아쉬움 뿐. 지나치다 주머니에 잔돈을 쥔 손을 움찔움찔 했던 순간들이 밉게 떠올랐다. 한 번 쯤은 껌 한 통 사드릴 걸는 아쉬운 마음에 꽃 하나 사서 둘까 하다, 그만 관뒀다. 그 어떤 좋은 꽃을 놓아아도 다시 살 수 없 껌이고, 다시 볼 수 는 풍경일테니. 그 곳은 어떤 꽃도 시드는 일이 없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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