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사람이라 당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 이른 아침마다 같은 옷차림, 피곤한 표정, 하루가 전혀 기대되지 않아보이는 얼굴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렸기에 회사의 직무나 직책 같은 것은 전혀 이해 못해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일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웩. 불행할만도 해. 하루종일 같은 자리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얼마나 지루할까. 학교는 6학년이 끝이지만, 회사는 끝도 없을텐데. 학교에서도 장래희망에 ‘회사원’을 적는 초등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소방관, 화가, 연예인, 대통령, 심지어 ‘아빠’에 비해서도 그건 너무 재미없어 보이는 직업이었으니까. 회사원 따위는 정말 하고 싶은게 아무 것도 없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마지막 보루로 ‘저 그냥 회사원 할게요...’하며 끌려가버리는 불쌍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자기도 모르게 평범해져버려서 아침마다 행복해보이지 않는거야.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대통령, 장관, 공무원...’ 중학생의 꿈이 소박해지고, ‘하버드, 스카이, 인서울...’ 고등학생의 목표가 현실적이게 되면서 점점 어린 날의 추측처럼 나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평범함 속으로 빨려들어가는구나 했다. 나는 비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평범한 아저씨가 되겠지. 그러나 그 평범함이란게 상당히 갖기 어렵다는 걸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만만한 일들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쫓기고, 넘어지고, 엉망진창 구르다보니 그제서야 아빠가 다시 보였다. 아빠, 평범한 회사원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아저씨들이 가꿔놓은 평범함을 쳐다보게 되었다.
고길동, 신형만, 호머 심슨.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아저씨들. 한국, 일본, 미국. 국적은 각각 달랐으나 그들은 모두 극중 늘 피곤해 했으며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때때로 불평에 열을 올렸다. 작가가, 그래 극중 평범한 역할은 하나 있어야지, 해서 만드는 캐릭터가 아저씨 캐릭터 아닐까? 그들의 이야기는 가끔 특별편에서나 다루어졌고 내가 짱구나 둘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갔다올게', '아빠 왔다' 늘 똑같은 모양으로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내는 역할. 그러나 고길동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어른이라는 말처럼, 이젠 주인공들의 일상 따위가 오히려 소소할 만큼, 그들의 치열한 서사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같은 피곤과 아침 출근, 불평들을 팔아 그들의 큰 집을 샀고, 가정을 꾸리고, 몇 십 년 째 자리를 잡아왔다. 그렇게 어엿해지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평범으로부터 실패를 잔뜩 겪은 어설픈 나는 어린 날 둘리를 부러워 하듯 나이를 먹고 고길동을 부러워하고 있다.
내가 고길동처럼, 신형만처럼, 호머 심슨처럼. 그 옛날 우리 아빠처럼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힙겹게 회사원까지는 어떻게 되었지만 그들처럼 평범해지기 위해선 아직도 비범한 벽들이 너무나 많다. '크면 다 알게 돼 있어' 어엿한 어른이 이렇게 되기 힘들다는 걸, 그들도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아저씨들은 왜 몰라도 된다며 그토록 숨긴걸까. 어떻게 그 만만찮은 무거운 하루하루들을 평범함으로 숨길 수 있었던 걸까. 어쩌면 어린 시절 아빠에게 느낀 그 불쌍한 감정이 스포일러였나보다.
옛말 '어엿브다'는 당당하다는 뜻의 '어엿하다'와 조금 부족하다는 뜻의 -브다를 합쳐, 불쌍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어엿한 어른이 되는 과정은 필연처럼 불쌍함을 동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그들과 가까워진 나이에, 이제 나는 그들처럼 어엿한 가장으로 평범한 배경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