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 제일은 듣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예체능을 제외하면 <말하기 듣기 쓰기>였다. 줄여서 말듣쓰라 불렀다. 요즘은 <읽기>도 합쳐져서 그냥 <국어>가 되었다던데, 아무튼 난 국어 중에서도 말듣쓰를 특히 좋아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애기들은 낯을 많이 가린다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시키지 않아도 말로 표현을 잘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그 경과와 심지어 연도까지 죽 외워야 하는 사회나 국사는 내 취향이 아니었고, 입 꾹 다문 채 한참 수많은 수식을 지나 겨우 숫자 몇 가지로 떨어지는 수학 과학의 집요함은 딱 질색이었다. 어쩌면 나는 참 꼴통이었던 것 같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로 말듣쓰 시간에만 눈이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수업시간 밖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꽤 인기있는 남자애였다.(물론 주로 남자애들한테) 어떻게 보면, 조건이 좋았다. 우선 부산 사람 15년 경력은 눈에 띄기 유리했다. 특유의 악센트와 튀는 플로우는 서울말씨 친구들에겐 그냥 입만 열어도 화제였다. 거기에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본 썰들을 잘 외고 다녔다. 서로의 니즈가 맞았던 거다. 애들은 재미 있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고, 나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내 자리는 쉬는 시간마다 항상 남자애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러나 학교 밖은 달랐다. 학교는 같은 나이대에 비슷한 일상으로, 어떤 말로도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학교 밖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다른 환경과 니즈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쏟아지는 만남들 속에서 말하기의 포커스는 점점 자극에 쏠린다. 이왕 말할거라면, 더 자극적이고 들은 적 없는 특별한 이야기로. 어느 때는 과장도 섞어서, 극단적인 표현으로만 가득 채워서, 내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는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어서, 그 특별함을 유지 시키기 위해 말하는 데 애를 썼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되며 점점 내 포지션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과장인지 실제 다이나믹한지 그 인생들을 다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들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이런 적도 있다’하며 더 자극적인 이야기로 답가했다. 싸움이 시작됐다. 예전에 예능 중 ‘강심장’ 같은 토크쇼처럼, 누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잘하나 대결, 이른바 불행배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는 뜨거운 피가 뛰는 말하기 전사로, 카페는 흡사 검투장으로, 항상 대결이 시작되면 끈질기게 상대를 추격했다. ‘이런 경험은 없지?’, ‘그거보단 이렇게 힘든 적 없지?’ 내가 가진 아주 밑바닥의 불행까지 삭삭 긁어 한껏 자랑해내고 어김 없이 가장 특별한 사람을 성취해내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너무나 피곤했다. 나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별난 일을 많이 겪은 불행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불행배틀의 의도가 아무리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여기 있잖아’로 위로를 주려는 선한 것이었더라도, 결국은 심한 불행과 더 심한 불행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해봐야 그 대화가 행복해질 리 없다. 더군다나 남의 손목이 통째로 잘렸다고 내 손가락 끝 박힌 작은 가시가 덜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항상 불행을 말하는 순간 지금보다 불행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듣는 사람에게도, 내 스스로에게도. 그러니 우리는 불행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불행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말을 아껴야만 한다. 단언컨대 불행배틀에는 승자가 없는 법이다.
요즘은 말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정확히는, 듣는 연습을 한다. 좋은 사람이란 건 그렇게 특별한 말들로 증명하는 게 아니었는데, 상대의 눈을 쳐다보는 정성 어린 눈빛과, 지금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끄덕거림으로 나를 말해야 했는데. 많은 기억들을 말하느라 자주 상대방의 말을 기억하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특별하기 위해 나를 불행으로 몰아세웠던 내 스스로에게 대해서도. 할 수 있다면, 이제라도 ‘말을 참 잘하는 사람 같아’보다 ‘말을 참 잘 들어주는 사람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암만 생각해도 그게 더 좋은 사람이다.
요즘 이렇게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 ‘말듣쓰’ 중 ‘듣’만 남았다. 글에서도, 읽을 만한 이야기를 쓰기 보단,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쓸 수 있길. 댓글로 몇 자, 힘들었던 일상 털어놓고 위로 받았다 쓰일 수 있는 그런 글. 내 글은 그렇게 정성 어린 눈빛과 당신을 이해한다는 끄덕거림을 가득 담아서 읽는 이들을 몇 시간이고 와락 들을 수 있는 따듯한 글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