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로 가는 야간열차
김준산 읽기(3), 슬라보예 지젝, 10월 21일 단상
재앙의 도래
하이에나의 식사는 끝났다. 불 꺼진 량은 탁한 열기가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다. 열차 바퀴의 철컥거리는 소리는 욕구를 해결한 짐승의 심장박동을 닮았다. 심야의 객실은 코 고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섞여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드문드문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은 열차 안의 어두운 표정을 포착한다. 사냥을 마친 짐승들의 밤은 평화롭다.
그녀는 객실 맨 뒤에 앉았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앞일을 생각하면 두려운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배부른 돼지처럼 누워있는 저들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재앙은 곧 덮칠 것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녀는 깍지 낀 손을 힘껏 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든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몇 번이고 마음으로 되뇐다.
불가능한 주문은 오래가지 못한다. 무력한 기운은 금세 회의적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을 거야. 난 비참하게 죽게 될 거고' 그녀는 창밖을 바라본다. 별이 보이지 않는 날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과 밖이 도대체 구분되지 않는다. 어두운 미로에 갇혀버린 것 같다. 어디로도 탈주할 수 없는 장소는 바깥이 없다. 온통 캄캄한 어둠이 지배할 뿐이다.
촛불
그녀는 가방을 뒤진다. 무심코 흰 촛대를 집는다.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이려다 그만 떨어뜨리고 만다.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문틈으로 들어간 것을 집었다.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이 신중해진다. 절대 그들을 깨게 해선 안 된다. 앞 량에서 있었다는 끔찍한 소동은 생각도 하기 싫다.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자신을 숨기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 화려하고 큰 빛이 아닌, 좁고 어두운 곳을 잠시라도 밝혀줄 빛. 그는 그곳으로 도착할 것이다.
촛불을 켠다. 노란빛이 그녀의 어둠을 지워간다. 진탕 먹고 마신 이들의 역겨운 속내를 촛불이 태운다.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좁은 객석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빛은 어둠을 빼앗고, 천장을 고요하게 데운다.
촛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조급해진다. 열차가 덜컥거릴 때마다 불은 꺼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타들어간다. 오늘, 그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앞칸의 배부른 남자가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란 그녀는 오른손을 덮개처럼 씌운다. 불은 손을 타고 흐른다.
'저는 진정 우리가 잠재적 위험으로 가득 찬 혼동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주목하는 것은 파시즘과는 다른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독재 사회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위험하고도 흥미로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고, 다시 강조하자면, 인간 본성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젝